Category : 시흥시(始興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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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남계술(1846-1903)은 조선 시대 문신으로 자는 치문(致文), 본관은 의령이다. 성균진사를 거쳐 사옹원 주부, 내무부 주사, 사헌부 감찰, 상서원 주부, 의금부 도사, 정산군수, 부여군수를 역임하였다. 비신의 규모는 130 x 42 x 16cm로 기대석 없이 지면에 놓여 있다. 【참고문헌】 시흥시, 1995, 『시흥의 문화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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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하연은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연량, 호는 敬齊, 본관은 진주인데 태조 5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세종이 즉위하자 知申事, 예조참판을 지낸 후 세종 5년 대사헌으로서 조계종 등 불교 7종파를 신, 교 양종으로 통합할 것을 건의, 시행케 했으며 경상도 관찰사, 예조참판, 평안도 관찰사에 부임했고 한 때 유배되었으나 다시 형조참판, 대제학, 대사헌, 좌참찬, 우찬성에 올라 70세에 영의정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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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광석동 선정비군은 현 위치(물왕동 372)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떨어진 노변에 있었다. 1980년대에 이 곳으로 옮겨졌다. 3기의 선정비가 있다. (1) 군수 권용정 영세불망비(郡守權用正永世不忘碑): 비신의 규모는 133 x 58 x 22cm. 1848년 건립. (2) 군수 박기회 거사비(郡守朴氣會去思碑): 비신의 규모는 123 x 42 x 16cm. 1873년 건립. (3) 관찰사 이규현 영세불망비(觀察使李奎鉉永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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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장운익은 조선대의 문신으로 자는 萬里, 호는 서촌, 본관은 덕수이며 장추의 父로 선조 12년 사마시를 거쳐 1582년 式年文科에 장원하여 공조좌랑, 예조정랑 등을 지내고 1591년 양양부사로 재직중 정추의 일당이라 하여 귀양, 1592년 임란이 일어나자 풀려나왔다. 후에 다시 병조판서가 되었다. 비대석은 높이 94cm로 하부에는 3구획으로 하여 운문, 중부에는 4구획으로 하여 안상, 비신은 높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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