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광주광역시(光州廣域市)


명사|||문화유산 광산사(廣山祠)는 오겸(吳謙, 149-1582)을 제향하기 위해 1825년 후손들이 세운 사우(祠宇)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단 없이 정평주초 위에 원주형의 기둥을 세웠으며, 주두는 익공식을 따르고 있다. 현판은 없으나 전면에 광산사 영각 상량문(廣山祠影閣上樑文)이 걸려 있다. 내부는 근래에 오겸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으며 내부 벽면에는 사군자를 그려 놓았다. 상량문에는 ‘崇禎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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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고인돌 무리는 동호교 인근 산 기슭에 위치한다. 이 바위들은 산 위의 암벽에서 채석한 돌로 추정되며, 현재 확인된 4기는 고인돌로 추정된다. 확인된 고인돌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1호 고인돌- 상석 크기는 320 x 220 x 150cm이고, 지석은 1개이다. 2호 고인돌- 상석 크기는 280 x 230 x 50cm이다. 3호 고인돌- 상석 크기는 340 x 370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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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광주 향교(光州鄕校)는 현재 광주공원 옆에 위치해 있다. 광주 향교는 태조(太祖) 7년(1398) 무등산(無等山) 장원봉(壯元峯) 밑에 건립되었으나 호환(虎患)으로 동문 밖(현재 동명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다시 큰 수해(水害)를 입어 성종(成宗) 9년(1488) 당시 광주현감(光州縣監) 권수평(權守平)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건물은 소실되었으나 위패는 권일제(權一濟)가 호위하여 화(禍)를 면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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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포충사(褒忠祠)는 고경명(高敬命)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그의 두 아들 고종후(高從厚), 고인후(高因厚), 그리고 유팽로(柳彭老), 안영(安瑛) 등 5인을 모신 사액사우(賜額祠宇)이다. 고경명과 그의 두 아들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금산(錦山) 전투에서 전사하자, 선조(先祖) 16년 그를 추모하는 사우를 짓도록 하고 포충사라고 사액하였다. 현재의 포충사는 1978년 정부의 성역화(聖域化) 방침으로 전면 개수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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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재명석등(在銘石燈)은 대황사지(大皇寺址) 유물로 원래 광주읍성(光州邑城)의 남문(南門) 안에 있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석등의 형태는 팔각석등으로서 간주(竿柱)에 따르면 팔각 간주형 석등에 해당한다. 석등의 각 부재 중 지대석과 보주(寶珠)가 결실되었는데 이 중 보주는 다른 석재로 보완되었다. 복연대(伏蓮台)의 하대석은 마멸이 심하나 8엽의 연화문으로 보여진다. 하대석 위에 팔각 간주를 세우고 단판 9엽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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