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대전광역시(大田廣域市)


|||문화유산 송세영(성종 22년;1491-중종 27년;1532)은 송유의 현손. 송준길의 증조. 품계는 승사랑. 여러 번 증직을 받아 승정원 좌승지가 되었다. [前面] 有明朝鮮 承仕郞 贈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 宋公世英英之之 墓 贈淑夫人 谷山延氏附左 玄孫 工曹正郞 光식書(소자로 새겼음) [頭篆] 贈承政院左承旨 宋公墓碣銘. 정홍명 짓고 김수항 전 증손준길 씀 【참고문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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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곳은 야산 기슭의 숲이 우거진 계곡으로 원래 회덕현의 명소였다. 조선 후기의 거유 송시열(1607-1689)은 옥천 구룡촌에서 출생하여 회덕에서 성장하였다. 송시열이 소제에 살고 있는 동안에 흥농촌에 서재를 일으켜 능인암이라 하였다. 이것은 곧 그의 초년의 강학처이다. 뒷날에 암하 간변에 소재를 일으켰는데 이것이 곧 남간정사이다. 그 명칭은 주자의 운곡남간에 의한 것으로 주자의 남간시 일절을 미간에 달았다. 송시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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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선무랑 송여집의 묘 역시 이사동 하사부락의 은진 송씨 묘역에 위치한다. 봉분은 직경 6m, 높이 2.5cm이며, 상석과 장태석은 최근에 보석이 가하여진 것이다. 묘비는 이수형으로서 전체 높이가 203cm, 폭 86cm이다. 문인석 1기가 있고 그 크기는 175cm x 50cm x 43cm이다. 【참고문헌】 『대전시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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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 정우당은 은진 송씨 청풍송파의 현조인 송세경(1494-1558)이 주산동(위치는 상곡사 참조)의 자택 안에 연못을 파고 주위에 대나무를 심어 그윽하게 꾸미고 그 옆에 세운 건물이다. 건립 시기는 모르지만 그의 장년기와 만년기에 해당하는 16세기이다. 송세경의 자는 정지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학에 뜻을 두고 심취한 나머지 병을 얻어 뒤늦게 43세 때인 중종 31년(1536) 문음으로 벼슬을 올랐다. 찰방, 주부, 감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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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둔산동 언덕의 최북단 표고 50m 높이의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은 모두 13기(基)가 조사되었는데, 바닥이 평평하고 아무 시설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나 바닥이 둥근 모양을 한 것도 있어 집자리 외에 다른 특수한 기능을 가진 구조도 있는 듯하다. 토기편과 석기가 많이 나왔는데 토기는 서해안 계통의 빗살무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무늬가 구연부(口緣部)나 동체부(胴體部)에만 한정되어 있고 바닥에는 보이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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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박사진은 선비로서 글을 읽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헌(趙憲)의 진영으로 달려가서 청주성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고 왜적이 쳐들어 온다는 금산으로 달려가 700명과 함께 금산 와룡평에서 싸우다가 전사한 의병 별장(義兵別將)이다. 나라에서는 그의 혁혁한 공훈을 높이사 이곳에 정문(旌門)을 세우고 그의 공훈을 후세에 빛나게 하였으나 그 후에 정문은 도시계획에 따라 없어지고 지금은 개인집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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