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08 중요민속자료(Folklore)

[Name] National Folklore Cultural Heritage


명사|||문화유산 약 300년 전 양옹(良翁) 이익(李瀷)이 건축하여 거주하였는데 조선 효종대 명장 이완(李浣, 李瀷의 四寸)이 이 곳에서 이익에게 글공부를 하였다고 전하는데 고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그 후 충주목사(忠州牧使)를 역임한 박규희(朴圭熙, 朴參判이라고 부름)가 오랫동안 살아오다가 이팔영(李八榮)에게 매각하였고 1930년 김유창(金裕昌, 김주태의 조부)이 매입하여 현재까지 이르렀다. 김주태(金周泰) 부친 김영수(金靈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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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건물은 한식 목조 기와지붕으로서 행랑대문채와 몸채로 분리되어 있다. 몸채에는 사랑채 부분과 건너방 부분이 남북하여 골복도를 사이에 두고 있다. 한옥이라지만 洋風과 日本折衷式이 많이 가미되었고, 그런가 하면 벽면에는 花草墻式 照墻으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은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 한국 상류사회의 저택으로 개량된 것 중 으뜸이라 할 수 있으며 대지의 위치로나 정원의 꾸밈새로 보아 보존되어야 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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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별장은 彰義門 밖 부암동 별장 지대에 있었으며 조선 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에 딸린 별당으로서 석파정과 같이 있었으나 1958년 현위치로 이전되었다. 건물의 크기는 40여 평으로 규모는 작으나 건재와 만든 솜씨가 좋으며 큰방, 건넌방, 대청방 등으로 나뉘었다. 큰방은 대원군이 기거하며 지냈으며 건넌방은 손님 접대용으로, 대청방은 그가 즐겨 그렸던 난초를 그릴 때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평면은 ㄱ자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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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선생(1812-1884)은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한 국악의 개척자이다. 이 건물은 1853년 이후 판소리 사설(辭說)의 정리(整理)와 창극화(唱劇化)를 위해 노력하던 때에 지었는데 1899년 그의 아들이 중수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본래는 초가지붕이었던 것을 한·일합방 이후 함석으로 개조하였다. 대지 346㎡(105평)이고 건평은 66㎡(20평)이다. 【참고문헌】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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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용욱 가옥은 집 앞 솟을대문에는 상량문이 남아 있어 1904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고 안채는 상량문에 1902년에 지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안채는 전형적인 남부 지방식의 5칸 전후좌후퇴집이다. 동쪽에 부엌을 두고 다음이 큰방, 복판은 2칸 대청, 맨 끝이 작은방이다. 구조는 2고주 5량인데 대청 중앙만 긴보 5량이다. 납도리에 장혀를 받쳤으며 보밑에는 단이를 끼웠다. 사랑채 또한 남부 지방식 평면으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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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임진왜란 때 김호(金虎)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이 의병을 모집하여 경주 노곡전투(奴谷戰鬪)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한 김호의 생가로 자연석과 장대석(長大石)으로 축대를 쌓고 그위에 건립한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집이다. 이 집은 17세기 전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민가로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이다. 집의 배치는 정면에 기와집의 안채를 두고, 서쪽에 초가집의 행랑채와 동북쪽에 가묘를 두었다.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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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된 이 집은 임진왜란 이전의 건축이라 하는데 원래는 대문간채와 사랑채의 좌측에 연접된 부속채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 전체 건물은 낮은 뒷동산을 배경삼아 다소 경사진 대지에 동남향하고 있다. 우측 전면으로 돌출시킨 사랑채는 주위에 난간을 돌려 누모양으로 꾸몄다. ‘ㄱ’자로 꺾어 후퇴시킨 안채는 2단으로 높이 쌓은 축대위에 세우고 중문앞에 여러 단의 계단을 설치하고 있어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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