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03 사적(Historic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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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공식명] 慶州鷄林. 계림은 첨성대와 반월성(半月城) 사이에 있는 숲이다. 고림(古林)이 울창한 계림은 신라 김씨(金氏)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강 전설(誕降傳說)과 관계가 깊은 숲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탈해왕(脫解王) 4년(60) 8월 4일 밤에 호공(瓠公)이 반월성 남쪽 마을을 지나는데 숲속에 황금으로 된 궤(櫃) 하나가 나무가지에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흰 닭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이 광경을 탈해왕에게 고하자 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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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경주 구정동 방형분(慶州九政洞方形墳)은 신라 분묘 가운데서는 희귀한 방형(方形)의 고분으로 12지신상의 호석이 3개씩 둘러져 있다. 현재 고분 내부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도록 문시설되어 있다. 석축으로 된 연도와 현실(玄室)이 있고 안상(眼像)을 새긴 시상(屍床)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이 방형분은 그 의장(意匠)을 당시의 석탑에서 배워 왔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조각부 석탑은 9세기대에 이르러 나타났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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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인천에서 천주교 선교 활동이 시작된 것은 고종 26년(1889)부터이다. 『답동성당 85년사』에 의하면 고종 24년(1887) 5월 한불조약이 비준됨에 따라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조선교구장 블랑(Blanc, 白圭三) 주교는 빌렘(Jaseph Wilhelm, 洪錫九) 신부를 인천 초대 본당 신부로 임명하여 1889년 7월 1일 부임하도록 하였다. 인천에 부임한 빌렘 신부는 선교 활동을 전개하면서 답동 언덕에 3,212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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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명활산성(明活山城)은 언제 처음 축조하였는지 뚜렷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신라 실성왕(實聖王) 4년(505)에 왜병(倭兵)이 이 성에 침입한 사실이 기록에 남아 있음을 볼때 실성왕 이전에 축성된 것은 분명하다. 진흥왕(眞興王) 15년(554)에 수축하였고 진평왕(眞平王) 15년(593)에 개축하였는데 주위가 3,000보나 되는 큰 성이다. 지금은 대부분 붕괴되었고 일부에서만 원형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성의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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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부여 나성은 부여가 백제의 말기 도읍으로 기능하였을 때 도성과 연결하여 왕도의 방어를 위해 구축된 성으로, 현재 부여읍을 중심으로 외곽에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나성은 부여읍 북단에 자리한 부소 산성에서 동서로 뻗고 있다. 서측은 금강가를 따라 길게 드리워져 있고, 동은 청산성의 외곽을 돌아 석목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나성은 백제기에 그 기능이 발휘되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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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 고분은 1932년 송산리 고분 지역의 도로 공사 중에 노출된 것으로 1∼4호분의 동측부에 자리한 1호와 2호의 중간지점에서 남측 아래에 위치한다. 고분은 지하로 묘광을 파고 그 안에 할석으로 현실을 축조하고 있는데 현실은 장방형으로 연도가 없는 수혈식 구조로 확인된다. 현실은 길이가 약 250㎝인데 방향은 정확하게 남북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또한 바닥과 함께 모든 벽면을 백회를 바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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