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충청북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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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수온은 조선 초의 문신, 학자로 자는 문량(文良), 호는 승애(乘崖), 세종 20년(1438)에 진사가 되고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이 되어 세종의 특명으로 진현전에서 『치평요람(治平要覽)』의 편찬과 세종 27년(1445)에 승문원 교리로서 『의방유취(醫方類聚)』를 편람하였고 부사직 때는 『석가보(釋迦譜)』를 증보하였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서거정, 강희맹 등과 문명을 다투었으며 『사서오경』의 구결을 정하고 『명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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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박세화의 호는 의당(毅堂), 순조 34년(1834)에 함경남도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태백산(太白山)에서 입산 수도하다가 음성으로 와서 거주를 정하고 후세 교육에 많은 업적을 남기었고 애국충정으로 생애를 마친 의사이다. 의당의 높은 인망과 저세한 학문이 원근에 소문이 나서 충주, 제천, 진천 등지와 멀리는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에서까지 입문 수학한 제자가 수백명에 달하고 있다. 또 애국열사로서 빛을 남긴 분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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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고려 정종 3년(948) 때 지금의 서울 봉천동에서 출생하여 1031년 84세로 별세하였다. 성종조에 갑과(甲科)에 장원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 승지(承旨), 중추원사(中樞院使), 서경유수(西京留守) 등을 역임하였고 현종 9년(1018) 거란(契丹)의 장수 소배압(蕭排押)의 10만 대군이 흥화진(興化鎭)을 공략할 때 탁월한 작전과 용병으로 거란병을 격파하여 국난을 구한 바 있는 고려 명장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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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동오 신홍식선생은 1872년 3월 1일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에서 출생하여, 약관으로 서울에 유학한 후 기독교신자가 되어 공주감리교회 담당목사로 있으면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48세인 기미년(1919년)의 3·1운동 때에는 이승훈(李承薰) 등과 함께 기독교 대표로서 33인 중 1인으로 날인하였다.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5년간 복역한 후 1922년에 출옥하였으나, 1937년 3월 18일 향년 66세를 일기로 별세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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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원립(1596∼1649)의 본관은 경주, 자는 사탁(士卓)으로 광해군 폐모사건 때 대궐 앞에서 임금에게 간하다가 금고되었고, 인조반정 이후 과거에 급제하여 감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예조판서에 증직되었다. 묘의 형태는 유돌분(乳突墳)으로 그의 묘역은 300여 평에 달하는데 부인 전주 이씨와의 쌍분이다. 묘 앞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고 망주석 1조와 문관석 1조가 있으며 묘역 앞에 조선 숙종 25년(1699)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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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지걸(李志傑, 1632∼1702)은 숙종조 문신으로 호는 금호(琴湖), 본관은 성주이다. 벼슬은 첨지중추부사 오위장이며 한시에 능하고 좌찬성이 추증되었다. 묘역은 약 200평 정도이며 상석, 묘갈, 망부석 등 석물이 있다. 묘갈 비문은 윤증(尹拯)이 찬하고 조상우(趙相愚)가 글씨를 썼으며 두전(頭篆)은 최석정(崔錫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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