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서울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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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석진(1843-1910)은 조선 철종 11년(1860)에 과거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서 1901년에 判敦寧府事에 이르렀다. 1905년에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항의 상소를 하여 을사오적에 대한 처형을 주장하였으며,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음독 자살했다. 62년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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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화령군(1538-?)은 成宗의 14남 楊原君의 3남이다. 이름은 玉命이고, 자는 彦珪이다. 참판 김광진의 妾女와 결혼하였다. 원래는 종3품 副正인데 君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宣祖로부터 말 한 필과 가죽 신발을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문헌】 서울특별시 중랑구, 1995, 『중랑구 문화유적 지표조사 및 역사문화 탐방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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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方定煥(1899-1931)의 호는 小波로 소년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이다. 일본 東洋大學 문학과에 재학할 때 색동회를 조직하여 소년운동에 앞장섰다. 귀국 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년운동을 주창하였으며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였다. 1922년 5월 1일을 기준으로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였다. 1931년 새로운 월간 잡지 『彗星』을 발간했으나 같은 해 지병인 신장염으로 사망하였다. 방정환은 우리나라 최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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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李正英(1616-1686)의 자는 子修, 호는 西谷, 본관은 全州로 호조판서 景稷의 아들이다. 1636년 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 수찬 등을 거친 후 이조정랑을 역임했다. 1672년 漢城府判尹으로 동지부사가 되어 淸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했다. 판돈령부사를 역임하였으며 숙종 11년(1685) 기로소에 들어갔다. 묘 주위에는 神道碑 1기, 墓碣 1기, 床石 1기, 文官石 2기, 望柱石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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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 고종 28년(1891)에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정치가, 교육자, 언론인으로 호는 仁村이다. 1914년 일본 早稻田(와세다)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중앙대학교를 인수하고 1917년 교장에 취임했고 1919년 경성방직회사를 창설하여 민족 자본 육성에 노력하는 한편 1920년에는 동아일보를 창간하여 제 2대 사장에 취임하고 1927년 사임했다. 1931년 만보산 사건이 나자 위문금을 중국 영사관에 보냈고 1932년에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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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조선의 명신으로 자는 知翁, 시호는 文貞, 본관은 晋州이며, 김종직에게 배우고 성종 1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함경 평사를 지내고 평안 감사를 거쳐 연산군 10년에 이조참판까지 올랐으나, 판서인 임사홍의 중상으로 벼슬을 버렸다. 박원종, 성희안 등과 중종반정을 일으켜 정국 공신에 책정되어 청청부원군의 호를 받고 우의정, 병조판서를 겸임하며, 중종 5년 삼포왜란을 평정하였고, 중종 7년 영의정에 이르는 등 문무를 겸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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