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정려(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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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모우당(慕友堂) 우문화(禹文華)의 아들 봉사[奉事: 종팔품관(從八品官)] 우집(禹鏶)의 처이다. 정유왜란(1597)때 산중으로 피난하였는데 왜적이 이르러 조모를 죽이고 방씨를 붙잡거늘 땅에 넘어졌다. 낯을 가리고 적을 꾸짖다가 끝내 해를 입었다. 그 자손 중에 8명의 효자가 나와 일렬팔효(一烈八孝)로 일컬어졌다. 신해년 홍수에 정려비가 없어져 순조 13년(1813)에 비를 중건하고 일두 선생의 10대손 종암(鍾巖) 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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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오비각은 독촌공(獨村公) 조종영(趙宗榮)의 효성을 기린 정려각(旌閭閣)이다. 조공(趙公)은 조선 단종조 생육신(生六臣)의 한분인 어계 선생(漁溪先生)의 후손으로 학문과 행실이 두터웠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살아 계실때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효행이 세상에 알려져 고종 29년(1892) 효감유허비(孝感遺墟碑)가 세워졌고, 광무(光武) 9년(1905)에 조정(朝廷)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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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참봉 정춘응(鄭春興)의 효성이 지극하여 조모가 돌아가신 뒤 주야로 조모묘 옆에서 시묘를 극진히 한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진양 정씨 문중에서 세웠으며 전라도 구례에 있던 것을 그의 후손들이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참고문헌】 함양군, 1996,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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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청도인 김영묵(金英默)과 그의 아들 김재철(金在喆)·재철(在喆)의 처(妻) 정씨(鄭氏)의 효행(孝行)을 기려 고종 계미년(1833년)에 감찰(監), 재철(在喆)은 교관(敎官), 정씨(鄭氏)에게는 영인(令人)으로 추증하고 함께 정려를 내렸다. 【참고문헌】 거창군·거창문화원, 1995, 『거창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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