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정려(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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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임운(林運)은 만회(晩悔) 임상재(林尙梓)의 후손이다. 어머니 병중에 인분을 맛보며 병증을 살피고 단지(斷指)하였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중에는 죽만 먹고 3년동안 여막에서 살았는데 맹호가 와서 끝날 때까지 호위하였다. 정려기는 숙종 10년(1684)에 문과 급제하고 병조참의에 이른 박효삼(朴孝參)이 지었다. 정조 13년(1789)에 정려를 세웠다. 1983년에 이건하여 한글로 풀어 효자비를 다시 세웠다. 【참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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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송문은 여산인으로 12세에 부친을 여의고 상례를 극진히 하였다. 모친병에 상분하여 증세를 살피고 별세하니 여묘하였다. 만년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안음현 훈도를 지냈다. 명종 10년(1555)에 정려가 내렸다. 공의 7세손 송시대(宋時大)가 순조 30년(1830)에 정려비를 중건하였고 7세손 송시덕(宋時德)이 글을 지었다. 【참고문헌】 함양군, 1996,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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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예동어귀의 고개길 위에 있다. 겨울 대추로 아버지를 낫게 한 효자 곽기치를 기려서 세웠다. 원래는 남원군 인월의 자래리에 세웠다가 효자의 5세손들이 1883년 인월의 정려를 그대로 두고 예동에 자연석을 다듬어 비문을 세웠다. 【참고문헌】 거창군·거창문화원, 1995, 『거창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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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조선시대의 강우(姜瑀), 강서(姜瑞), 강수남(姜壽男), 강기룡(姜起龍), 김해허(金海許), 강재중(姜在重) 등의 충효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정려각으로서 6동이 한곳에 위치하고 있다. 모암공 정려(慕庵公旌閭)는 1495년(연산군 2년)에 감찰공 강효정(姜孝貞)의 손으로 태어나 효성을 다한 강우(姜瑀)를 추모하기 위해 1744년에 건립된 맞배집이다. 해곡공 정려(海谷公旌閭)는 중종 5년(1510)에 강우(姜瑀)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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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정동호(鄭東昊)는 정희린(鄭希麟)의 5대손이다. 아버지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초상을 당하여 슬프게 통곡하고 3년동안 시묘를 하였다. 1929년에 유림향약본소 도유사 정성묵(鄭成默)이 비문을 짓고 1935년에 그 아들 정창학(鄭昌學) 등이 세웠다. 【참고문헌】 함양군, 1996,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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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연체려는 정양재(靜養齋) 노형발(盧亨發)과 요월당(遼月堂) 노형철(盧亨哲) 형제의 정려이다. 그래서 연체려(聯閭)라고 하였다.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의 후손이다. 모두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었다. 부모병에 상분(嘗糞), 단지(斷指), 삼년 시묘(侍墓)하였고, 장례때 남계수가 불어 길이 막히자 크게 통곡하니 물이 중간에 끊기어 무사히 지나가는 기적이 있었다. 고종 28년(1891)에 정려를 명하였고 정려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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