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삼국시대사지(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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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개선사’라는 절 이름은 다른 각종 지리지에서도 등장하지 않고 있어 아마도 이 지역의 이름이 “개선동”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현재 절터에는 석등 이외에 다른 유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이태호·황호균, 1995, 〈담양군의 불교유적 및 도요지〉, 『담양군 문화유적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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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문화유적총람』에는 ‘화장산등에 있고 ‘화장사지’라고 부른다. 와편이 산재되어 있고 높이가 약 70cm의 좌상이 있으며 대부분 풍화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조사결과 당동리 1구 왼쪽 산등 너머에 절터가 있고 이 곳을 주민들은 ‘한적골’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를 지칭해서 ‘화장사지’라고 한것 같다. 이 곳에서 옮겨온 원형 연화문 대좌를 갖춘 석불은 현재 당동 마을에 옮겨져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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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여지도서』에 처음으로 사명이 보인다. 운람산 중턱의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수도암이 원래 중흥사의 암자였는데 중흥사는 폐허되고 수도암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조선 사찰 사료』에 실린 ‘흥양 모악산 중흥사 수도암 불량기’ 에 따르면 중흥사는 모악산 중턱에 있는데 영허당 대사가 음적 고사에서 옮겨와 창건했다고 한다. 이 사지는 중흥 마을 뒤편에 있는데 이 곳은 ‘절골’ 혹은’불당골’로 불린다. 『고흥 장수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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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사지는 고길 마을 뒤로 700m 지점의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축대만 남아 있으며 약간의 기와편과 도자편이 산재해 있다. 축대는 자연석을 쌓아 석축으로 삼았는데 동∼서 방향으로 20m 정도 군데군데 석축이 남아 있으며 높이는 30∼50cm이다. 전언에 의하면 일제시대 말기에 금동사리탑이 출토된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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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도선국사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걸쳐 광양지방 일백팔(一百八)개의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황룡사는 그 중에서 유일하게 태조 왕건의 지원을 받아 건립한 사찰로써 이 지방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곳이라 전하고 있다. 이 사지는 구황 마을 뒷편에 민가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논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논바닥 전체에 기왓장이 산재해 있다. 건물터라 추정되는 논에는 30∼50cm 크기인 주춧돌 4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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