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탄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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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대종사 박중빈은 1891년 5월 5일 길룡리 영천 마을에서 부친 박성삼과 모친 강릉 유씨의 3남으로 태어났다. 이 곳에서 14세까지 성장하면서 대각의 관건이 된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관해 의문을 낸 관천기의상을 나눈 곳이며 마당 바위로 산신을 만나기 위해 기도를 하러 다니며 삼령 기원상을 나눈 곳이다. 탄생가는 대지 148평, 건평 16평, 초가 4칸 네줄박이 집으로 남향집이며 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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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항일독립운동가(抗日獨立運動家) 전기홍(全基泓)이 거주하던 집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된 우진각지붕이다. 현재 민가로 사용되고 있으나 붕괴 직전에 있으며, 정면에서 좌측으로 첫째칸은 부엌으로 나머지는 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 이 생가에는 사랑채와 사당 등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전라북도편 ; 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88, 『장수군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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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강민첨은 고려시대의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며 시호는 은열공(殷烈公)이다. 고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현종 3년(1012) 5월에 안찰사(按使)로서 동여진(東女眞)이 영일(迎日), 청하(淸河) 등지로 쳐들어 오자 주군병(州郡兵)을 독려하여 격퇴하였다. 이어 동왕(同王) 7년(1016)에 내사사인(內史舍人)에 오르고 동왕(同王) 9년(1018)에는 거란의 소배압(蘇排押)이 10만의 군사를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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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영랑 김윤식(1903∼1950)이 태어난 곳이다. 강진읍 남성리 주택가의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택 뒤편으로는 동백나무와 죽림 등이 우거진 야산을 끼고 있어 매우 한적하다. 건물의 배치는 대지의 좌측에 안채를 남동향으로 앉히고 약 10여 m 떨어진 우측에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두 건물 사이에는 영랑시비가 설치되어 있고 사랑채 앞에는 자연석을 이용한 화단과 연못이 있다. 【참고문헌】 전라남도, 1986,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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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권기일(權奇鎰)은 1886년 10월 6일에 이곳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이다. 한일합방(韓日合邦) 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이시영, 김좌진 등과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중학교를 설립하여 학도감재무감(學徒監材務監) 등을 역임하는 한편 대종교에 입교하여 참교, 지교 등을 지냈다. 그 후 상해 임시정부의 사명을 띠고 남북만주를 순회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연락 임무를 담당하다가 체포되었으나 다시 탈출하여 한족회(韓族會) 총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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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면우(李冕雨)는 1919년 5월 18일 화령 시장일을 기하여 숨어서 자기가 그린 태극기를 가지고 시장 중심부인 다리 위에서 장꾼들을 향하여 대한민국만세를 선창하면서 일본의 불법섭정을 규탄하고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일본인 순사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다년간 복역하였으며, 재산은 몰수당하고 가족은 추방당하여 흩어졌다. 그는 옥중에서 심한 고문으로 불구가 된 몸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다. 그의 묘소가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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