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효자비

Category Path : Korean Heritage Category » 충효비 » 효자비
Words Count : 417

명사|||문화유산 권경손은 본관이 안동이며 자는 순호, 호는 농은이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대신 앓기를 지성으로 하늘에 빌었다. 어느 날 간절한 기도에 감동되었던지 꿩이 마당에 들어오고,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오고, 박달나무에 버섯이 나고, 뽕나무에 오디가 달리는 기적이 일어나 이것으로 약을 다려 병을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상을 당하여서는 시묘살이를 다하였다. 이에 고종 17년(1880) 효자 정려를 받았으며, 증직으로 예조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홍영섭(洪永燮)은 부친 홍병유(洪秉裕)와 모친 평산 신씨사이에서 1889년 군위 대율리에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11세때 모친과 16세때 부친과 사별하였는데 3년동안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다. 31세의 나이로 홍영섭이 세상을 떠날 때는 온 마을 사람들이 슬퍼하였으며, 까마귀떼들이 온 하늘을 덮어 애도하였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Read more

|||문화유산 효자 이복의 정려비는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공주대학교 방향으로 가는 옥룡동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옥룡동 비선 거리에 위치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긴 후 1978년 새로운 행적비(높이 173㎝, 폭 54㎝, 두께 23㎝)와 함께 이 곳에 비각(정, 측면 1칸 맞배 기와 지붕)을 짓고 단장하여 1979년 준공한 것이다. 원래의 비석은 높이 162㎝, 폭 27㎝ 크기로 화강암제의 석주 형태의 비로, ..

Read more

|||문화유산 주세창의 호는 독송(獨松), 사직행(司直幸)의 자(子)이다. 성품이 지극히 온공(溫恭)하여 여묘(廬墓)에 매일 상식(上食)마다 시저(匙箸)의 소리가 쟁쟁하고 아침저녁으로 차를 올렸다 하며 물길이 멀어 불편하던 바 범이 묘옆에 우물을 파주었다고 한다.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아름답게 여겨 포(布) 삼백필을 상으로 주고 정일경원의주교수(廷日慶源義州敎授) 벼슬을 내렸다. 후에 그의 효행을 적은 비와 비각을 세웠다. 【..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