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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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안양면 기산리 마을 뒤에 있다. 처음에 안양면 기산리 290번지에 있던 것으로 백현남(白峴南)의 처 영광 김씨의 정렬문(旌烈門)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팔작지붕 소슬 삼문이다. 내부에는 영조 6년(1730)에 판각한 절부 김씨 사적이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이해준, 1989, 〈장흥지방의 유교유적〉, 『장흥군의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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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정문은 예산군 봉산면 당곡리 마을의 안쪽에 마을을 가로지르듯이 남쪽으로 길게 내려온 구릉의 중단부에 동향하여 위치한다. 정문은 2대에 걸쳐 효자가 된 효자 김상준·김현하를 기리기 위해 광서 18년에 세운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겹처마에 굴도리식의 가구양식을 하고 있다. 시멘트 기단 위에 가공하지 않은 자연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주를 올리면서 4면에는 홍살을 돌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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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신갑순 정문은 부여군 내산면 운치리 2구 마을의 입구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정문은 정·측면 1칸의 건물로 최근에 보수·정비된 듯 말끔히 단장되어 있다. 정문 주위에 보호 철책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그 안에 다시 측면과 후면에 시멘트로 낮은 담을 만들었다. 담장 안에 시멘트로 기단을 만들고 원형의 초석을 놓은 뒤 기둥을 올렸다. 4면은 홍살로서 시설하였고 가구 양식은 익공식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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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후진은 영조 때 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증직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양가(養家)의 부친이 노환으로 위독하게 되자 생가인 수원에서 200여리가 되는 혈동리에 4년간이나 왕래하면서 병간 하였다. 양부가 겨울에 머루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이를 구하려 할 때 호랑이가 감동하여 길을 안내하였다고 한다. 효자각은 신동면 증리에서 남산면 광판리로 가다가 우측 혈동리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 언덕에 있다. 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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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최유경(崔有慶, 1343∼1413)은 고려 우왕(禑王) 때 양공도 관찰사(楊廣道觀察使)를 지냈으며 조선 왕조의 개국을 도와 판한성부사(判漢城府使),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使)를 지냈으며 그 후 관직을 떠나 현 초평면 죽정대로 내려와 죽정(竹亭)이라 자호하고 한가로이 지내다가 태종 13년(1413) 71세로 졸하였는데 평소 그의 효행이 지극하였던 것을 기리어 세종때 정문을 세웠다. 정문은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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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갈망골 효자 박영철 정문은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 갈망골 마을의 남쪽 야산의 서향 사면 하단에 위치한다. 정문 건물은 구릉을 깎아 대지를 조성하고 잔디를 깐 후에 세웠다. 시멘트로 초석을 만들고 원주를 세웠으며 4면을 홍살로 돌렸다. 하방 아래는 고맥이를 하였고, 가구양식은 도리식이며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하고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내부 중앙 상단에는 현판을 걸었는데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박영철지문 장우임진명정려’라고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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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보령시 비산면 도화담리 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하는 밀양 박씨 효자문은 남향의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리고 사면은 홍살을 설치하였다. 내부에는 2기의 비석을 칸마다 1기씩 세워 놓았으며, 후면 중앙에는 중수기를 걸었고 좌측 벽 상단에는 사업기를, 우측 벽 상단에는 중건기를 걸어 놓았다. 또한 각 칸마다 비와 함께 현액도 걸려 있는데 좌측에는 “효자 처사박세주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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