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충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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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마을 입구 도로변에 있으며 “열부 고박정희처 김해 김씨지려(烈婦故朴正熙妻金海金氏之閭)”라고 각자했으며 “상원무오(上元戊午) 2월”란 각자와 비신에는 “상지이년 갑자사월(上之二年 甲子四月)” 즉 조선 인조 2년(1624)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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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박씨 부인은 남편 정씨가 병석에 눕자 정성을 다해 병구완을 하였고, 남편이 세상을 뜨자 자결하여 남편을 따랐다. 비는 북창마을 입구에 정려를 세워 보존하고 있다. 정려는 정, 측면 1칸에 맞배지붕이고 내부 중앙에 비를 세웠다. 비는 장방형 대좌 위에 비신을 세우고 옥개형 이수를 올렸다. 【참고문헌】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92, 『충남지역의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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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향리 김창경(金昌慶)의 처인 이천 서씨가 시집 올 때 시부모는 소경과 앉은뱅이였다. 그녀가 시집온지 1년만에 남편이 죽고 말았다. 가세가 기울어 방아품과 빨래품으로 시부모를 봉양하던 중 시부모가 병이 들어 정성으로 간병하였으나 결국 세상을 떠났다. 서씨는 장례를 마치고 9일간 단식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이천 서씨 열녀비(利川徐氏烈女碑)는 율세동 385번지의 민가안에 위치하는데 조선 임진년에 경상도 관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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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최종집의 처 삼척 김씨는 출가한지 두달만에 전염병으로 시부모와 남편의 상을 당하고, 아이마저 한달 만에 죽자 이에 저승에서 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섬기리라 마음먹고 음독 자결하였다. 【참고문헌】 강릉대학교박물관, 1995, 『강릉의 역사와 문화유적』;『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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