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충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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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categories : 열녀비 | 정려 | 정문 | 충의단비 | 효자비 |
Words Count : 2025

|||문화유산 최두상은 청렴하고 근실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등창으로 위독하자 손을 끊어 그 피를 마시게 하고, 꿩고기를 드시고 싶어하는 모친을 위해 뒷산에 올라가 기도하자 다음날 마당 울타리에 날아온 꿩을 잡아 봉양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여 세간에 칭송이 자자했으며, 숙종 33년(1707) 정려를 받았다. 현재 순조 34년(1834)에 건립된 효자비는 그 문중에서 이전하였다고 전하나 확인된 바는 없다. 【참고문헌】 강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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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임운(林運)은 만회(晩悔) 임상재(林尙梓)의 후손이다. 어머니 병중에 인분을 맛보며 병증을 살피고 단지(斷指)하였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중에는 죽만 먹고 3년동안 여막에서 살았는데 맹호가 와서 끝날 때까지 호위하였다. 정려기는 숙종 10년(1684)에 문과 급제하고 병조참의에 이른 박효삼(朴孝參)이 지었다. 정조 13년(1789)에 정려를 세웠다. 1983년에 이건하여 한글로 풀어 효자비를 다시 세웠다. 【참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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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송문은 여산인으로 12세에 부친을 여의고 상례를 극진히 하였다. 모친병에 상분하여 증세를 살피고 별세하니 여묘하였다. 만년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안음현 훈도를 지냈다. 명종 10년(1555)에 정려가 내렸다. 공의 7세손 송시대(宋時大)가 순조 30년(1830)에 정려비를 중건하였고 7세손 송시덕(宋時德)이 글을 지었다. 【참고문헌】 함양군, 1996,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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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택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계원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50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김택원은 김해인으로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부친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효도를 다하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1891년 명정을 내려 그의 효성을 기리게 하였고, 다음해인 1892년 시묘살이를 하였던 위치에 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이해준, 1989, 〈강진군의 유교유적〉, 『강진군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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