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충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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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청양군 운곡면 모곡리 마을의 621번 지방도 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남동향하여 위치한다. 정려는 참서관 김현배의 처인 능성주씨 정려로 남동향의 사면을 평탄하게 대지를 조성하고 잔디를 깔아 기단을 조성한 정·측면 1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하였으며, 2익공의 가구를 하고 있다. 4각의 고주초석위에 원주를 세우고 정려의 하방에는 고맥이 시설을 하였다. 건물의 사면에는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박공 밑에는 방풍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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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서한경 정려는 보령시 청라면 옥계리 서촌 마을 입구 길 옆에 위치하고 있다. 정려는 팔작지붕의 홑처마로서 익공식의 건물이다. 자연의 대지에 시멘트 기단을 설치한 후 화강암의 팔각고주를 올린 후에 원주의 고주를 올렸다. 사면을 홍사로 돌려 보호 시설을 하였으며 방풍판은 설치하지 않았고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내부에는 현액이 걸려 있는데 전면에 “효자학생 서공 한경지려(孝子學生 徐公 漢慶之閭)”이라 적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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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정문은 구이극(具爾極)과 그의 조카 시영(始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구이극은 본관이 능성(綾城), 자는 건중(建中)이고 봉일(鳳逸)의 둘째 아들이다. 집안이 대대로 충과 효를 행하였으므로 그도 어려서 부터 부모를 섬기고 윗 사람을 공경하는 도리를 알았으며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였다. 그는 잔치집에 초대되어 음식을 접대 받으면 돌아올 때 그 음식물을 싸와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이런 효행이 조정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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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정문(旌門)은 순조 30년에 이 곳으로 낙향(落鄕)하여 살던 경주 김씨(慶州金氏) 창익(昌翼)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 건평 3평이다. 김창익은 그의 어머니가 뇌종(腦腫)으로 병이 인중(印重)하게 되자, 밤낮으로 그의 어머니의 호흡을 입으로 도와서 병환에 차도(差度)를 보았다. 그러나 또 그의 어머니가 이질(痢疾)에 걸려 인중하였는데, 의원이 산토끼의 간을 먹어야만 낳는다고하여 사방으로 구하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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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 정문은 양천룡(梁天龍)의 충절과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양천룡은 본관이 남원(南原)이고 한림학사(翰林學士) 양준(梁俊)의 손자요, 판도판서(版圖判書) 양호(梁祜)의 아들로 고려 공양왕 때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가 병으로 돌아가니 6년간의 시묘(侍墓)를 마쳤다. 이에 세종 24년(1442)에 남원에 정려가 내려지고 1928년 철로공사로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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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광흥 효자각은 조선 고종 28년(1891) 문의현 삼도면 달산리(文義縣 三道面 達山里) 오늘의 청원군 부용면 문곡리 진골마을에 장례원경(掌禮院卿)에 증직된 효자 이광흥(李光興, 1756∼1814)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각이다. 지금의 효자문은 1950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인데 사면을 홍살로 막고 안에 편액을 걸었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1934년에 심석진(沈奭鎭)이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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