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충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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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Count : 2025

|||문화유산 민평은 민여검의 장남으로서 민씨 삼세 칠효(三世七孝)의 한 사람이다. 민씨 삼세 칠효란 민여검의 아들 민평, 민항의 형제와 민평의 아들 광신, 광민 형제 그리고 민항의 아들 광경, 민광신의 아들 경중, 광민의 아들 민원중을 말하는데 이들은 환로(宦路)에 추파를 던지지 않고 세빈(世貧) 속에 효행과 덕행을 닦았다. 민평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맛보지 않은 음식은 먼저 입에 대지 않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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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연체려는 정양재(靜養齋) 노형발(盧亨發)과 요월당(遼月堂) 노형철(盧亨哲) 형제의 정려이다. 그래서 연체려(聯閭)라고 하였다.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의 후손이다. 모두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었다. 부모병에 상분(嘗糞), 단지(斷指), 삼년 시묘(侍墓)하였고, 장례때 남계수가 불어 길이 막히자 크게 통곡하니 물이 중간에 끊기어 무사히 지나가는 기적이 있었다. 고종 28년(1891)에 정려를 명하였고 정려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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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효자 장사랑 난곡(蘭谷) 우석일(禹錫一)은 인조 11년(1633)에 모친 김씨가 병에 걸리자 단지(斷指)하여 소생시켜 천수를 누리게 하였다. 효자 학생 우광남(禹光男)은 9세때 적모(嫡母) 정씨(鄭氏)가 병이 나자 상분하여 증세를 살폈고 11세때 부친을 따라 길을 가던 중 도적을 만나 해치려고 하므로 슬피 부르짖으니 도적이 감동하여 풀어주었다. 두 효자에 대해 순조 7년(1807)에 모두 정려가 내렸다. 난곡 우석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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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장헌부는 무과에 급제한 후 임란을 맞아 진양성에서 당숙 웅해와 함께 왜적과 싸우다 전사함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채록되고 녹권을 내렸다. 1891년에 병조참의 동부승지를 추증받고 정려가 내려졌다. 거창읍 대동리에 세웠다가 1994년에 지금 자리로 옮겼다. 【참고문헌】 거창군·거창문화원, 1995, 『거창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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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관찰사(觀使) 삼로공(三路公) 김이음(金爾音)은 고려 공민왕 23년(1374)에 문과에 합격하여 조선 태종때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 선산 부사(善山府使), 진주 목사(晋州牧使)를 거쳐 강원 감사(江原監司)때 선정을 베풀어 명관록(名官錄)에 올랐다. 부친이 병환에 들자 사직하고 장기간 시병하며 효도를 하였다. 조선 태종때 정려를 내려 만백성과 관직자 전원에 귀감이 되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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