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정자


명사|||문화유산 연산군이 호사한 생활을 즐기던 곳으로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春塘臺와 그 동남쪽의 西忽臺, 玉流川 부근의 이 정자를 들 수 있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정면 1칸의 맞배지붕 납도리집인 이 집은 전후에 퇴마루를 깔았고 가구는 3량이며 홑처마에 긋기 단청을 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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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豊恩府院君 趙萬永의 구택지이다. 순조 8년(1808) 12월 6일 趙大妃가 이 곳에서 출생하였는데 출생하던 날 밤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정자 앞에 와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雙虎亭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조대비의 생가의 규모는 굉장하여 대비가 어릴 때 글 읽던 讀書堂이 북쪽 뒤 높은 곳에 1958년까지 남아 있었고, 생가 동쪽에 울창한 노송들이 있었다 한다. 그 옆에 있었던 조그마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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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시대 동헌에서 10리쯤의 거리에 선유담이 있으며, 이곳에 노송이 어우러진 자그마한 산세가 자리하고 있다. 이 산의 넓은 반석 위에 택당 이식이 ‘가학정’을 건립하고, 김광우는 영조 22년(1746)에 선유담 산록에 ‘유한정’을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현재는 폐허가 되었지만, 이곳의 절경에 감탄하여 정자의 전면에 우암 송시열의 친필로 새겼다는 ‘선유담’이란 글씨가 현재에도 뚜렷이 남아 있어 선인들의 풍류을 회상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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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현종 14년(1848) 김구혁이 선조인 감찰 김자현을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그 후 후손들이 강학하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1937년 주변의 개발사업으로 훼철되기에 이르렀으나, 후손 김영진 등 여러 종인들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이건되었다. 현재 영모정은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정자 내에는 시판 8개, 상량문 2개, 기문 4개, 임명록 1개로 모두 15개의 현판이 게판되어 있다. “숭정사월중춘김운상근술(崇禎四月中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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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쌍책면 성산리 내촌에 위치해 왔으며 황강 이희안의 도덕을 숭모하여 사림이 제향하는 곳이며 조선 명종(1564)에 사림이 연곡 서원을 창건하였다가 1871년에 청계 서원으로 하고 율곡면 내천에 옮겨 지어 황강을 주벽으로 하여 탁계 전치원, 설학 이대기를 배향하였다. 정자 아래에 관수정, 관풍대, 정충각이 있다. 장의공 이윤서가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와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고, 이괄의 난때에는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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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현재의 정자일곽은 박연정을 주건물로하여 솟을 삼문의 형식을 갖는 충의문(忠義門)과 재실기능의 추유재(追裕齋)가 부속건물로 세워져 있다. 그러나 충의문과 추유재는 최근(1957, 1966년)에 복원 및 건립된 것이기 때문에 건립 당시에는 정자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자는 정면 3칸에 마루를 깔았고 후면에는 온돌을 놓아 방을 만들었다. 구조는 고주가 없는 오량가구로서 팔작지붕을 덮었다. 마루둘레에는 계자난간을 둘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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