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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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categories : 격전지 | 대첩지 |
Words Count : 57

|||문화유산 정유재란시 금강 전투에서 패한 적장들이 정읍에 머물러 있을 때 입암 산성에서 유극인(柳克仁) 가복(家僕) 50여 명이 적 20여 명을 참살하고 유극인은 5, 6곳의 창상을 입고 끝까지 분전 적을 격퇴하였으며, 유윤근(柳潤根)은 입암산성 오황치하(五凰峙下)에서 적의 습격을 받아 의병이 흩어져 가니 공은 홀로 창을 들고 돌입, 수십 명을 참살하였다. 또한 이교국(李敎國)은 임진에 창의(倡義)하고 정유에 입암산성을 수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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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정유재란이 일어났던 1597년 8월 16일에 원신, 김언공이 남원, 전주를 거쳐 북상중 9월 7일에 직산(稷山)에서 패하고 남하하던 왜군을 맞이하여 기병법을 써서 이겼던 곳이다. 험한 절벽과 좁은 고개길을 이용하여 복병하고 급습하여 왜군을 물리쳤는데 지금 이 곳을 “애통이”라고 부르는데 “왜통(倭痛)”이 변하여 이렇게 되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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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양대박 전승지는 1592년의 임진왜란 당시 남원출신 의병장 양대박이 남원에서 규합한 의병 ‘감사자(敢死者)’ 천여 명을 거느리고 전주로 향하던 도중 운암면 금기리 및 장곡리 일대 산 계곡에서 왜적 만여 명과 만나 격전 끝에 크게 대파하고, 마침 왜군에게 끌려가던 남녀 수백명의 포로를 되찾는 대첩을 올린 곳이다. 양대박은 이 전투가 있었던 그 이튿날 전주에 진군하였으나 폭염을 무릅쓰고 강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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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정유재란시 정읍에서 남해 방면으로 이동하는 왜적이 순창을 잠시 경유하였을 당시 현감 조유는 호조참판 김홍원과 함께 추포(秋浦) 황신(黃愼)의 도움을 얻어 정병 천여 명으로 팔덕면 광덕산 아래 사정에서 대접전하여 많은 왜적을 죽였으나 아병도 많이 전사하였기에 백암마을 후록에 초혼장을 하였다. 이 곳에는 13㎡의 조공의 묘가 있으며 석물로는 상석, 비, 좌우에 망주석이 각각 있다. 【참고문헌】 전라북도, 1990,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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