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위인선현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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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동화면 동호리 동계 마을에서 동화면 소재지로 나오는 길에 김기(金紀)의 묘와 묘비 그리고 제실인 〈상의제〉와 강당인 〈숭인제〉가 함께 위치하고 있다. 김기는 황룡면 입향조인 숭조(崇祖)의 후손으로 1519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 전한(弘文典翰)을 역임하였으며 성품이 청렴결백하였는데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자 중종이 친히 묘자리를 하사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목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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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영랑 김윤식(1903∼1950)이 태어난 곳이다. 강진읍 남성리 주택가의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택 뒤편으로는 동백나무와 죽림 등이 우거진 야산을 끼고 있어 매우 한적하다. 건물의 배치는 대지의 좌측에 안채를 남동향으로 앉히고 약 10여 m 떨어진 우측에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두 건물 사이에는 영랑시비가 설치되어 있고 사랑채 앞에는 자연석을 이용한 화단과 연못이 있다. 【참고문헌】 전라남도, 1986,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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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면우(李冕雨)는 1919년 5월 18일 화령 시장일을 기하여 숨어서 자기가 그린 태극기를 가지고 시장 중심부인 다리 위에서 장꾼들을 향하여 대한민국만세를 선창하면서 일본의 불법섭정을 규탄하고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일본인 순사에게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다년간 복역하였으며, 재산은 몰수당하고 가족은 추방당하여 흩어졌다. 그는 옥중에서 심한 고문으로 불구가 된 몸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다. 그의 묘소가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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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원래는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慕華館이 있었는데 高宗 32년(1895) 高宗皇帝가 대한독립을 공포함에 따라 민간 단체인 獨立協會가 주동이 되어 建陽 元年(1896)에 慕華館을 헐고 대신 독립관을 세우고 대한독립을 기념하여 오다가 일정 때 무참하게 헐리었다. 【참고문헌】 손성우 편저, 1973, 『한국지명사전』; 서대문구, 1992, 『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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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권기일(權奇鎰)은 1886년 10월 6일에 이곳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이다. 한일합방(韓日合邦) 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이시영, 김좌진 등과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중학교를 설립하여 학도감재무감(學徒監材務監) 등을 역임하는 한편 대종교에 입교하여 참교, 지교 등을 지냈다. 그 후 상해 임시정부의 사명을 띠고 남북만주를 순회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연락 임무를 담당하다가 체포되었으나 다시 탈출하여 한족회(韓族會) 총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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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의병장 정세아(鄭世雅)의 장자인 정의번은 조선 명종(明宗) 15년(1560)에 이곳에서 태어났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부친을 따라 종군하면서 영천성 탈환에 큰 공을 세우고 경주 서천(西川)에서 부친을 구했으나 포위당해 전사하였다. 이곳은 그의 택지로 건물은 없어지고 택지만 후손들이 관리해오다가 1974년 영천댐 공사로 수몰되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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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이 바위는 그 형용이 마치 중이 長衫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禪’字를 따서 禪바위라 불렀으며 조선 太祖가 성을 쌓을 때 문신 鄭道傳과 王師 無學大師가 이 바위를 성 안으로 하느냐 성 밖으로 하느냐로 크게 의견 대립을 보았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참고문헌】 손성우 편저, 1973, 『한국지명사전』;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서대문구, 1992, 『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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