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위인선현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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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義庵 孫秉熙가 1912년 6월 19일 세운 건물로 義庵 선생이 보국안민을 내세우고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찾기 위해 지도자를 훈련시킨 곳이다. 이때 훈련 받았던 사람들은 3.1 운동 당시 주체가 되어 구국운동의 최선봉에서 앞장섰다. 정면 5칸인 팔작지붕의 鳳凰閣 前面 약 50m 지점에는 義庵 선생의 묘가 있으며 鳳凰閣 및 天道敎會館에는 그 당시의 유품이 남아 있어 역사적 의의가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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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덕명은 1845년에 김한기(金漢基)와 파평 윤씨사이에서 태어났다. 1880년대말 또는 1890년대 초에 동학에 입교하여 1892년 삼례집회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893년 금구, 원평집회는 김덕명 포(包)의 관할지역이다. 동학농민운동시에는 총참모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895년 1월 체포되어 3월 29일 전봉준과 함께 최후를 마쳤다. 그의 비와 무덤은 장흥리 안정 절골에 있다. 【참고문헌】 동학백주년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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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육사는 조선 고종(高宗) 광무(光武) 9년(1905)에 안동군 도산면 원천리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육사(陸史)이며 중국 북경대학 사회과를 졸업하고 신문기자, 사회운동가등 여러 경력을 거쳐 소설도 썼으나 시는 30세가 넘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는 상징주의 수법으로 시를 써서 주로 피압박민족의 울분을 그렸으며 1942년 북경에 갔다가 독립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일본 영사관에 체포되어 투옥중 북경에서 1944년에 옥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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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조 말의 큰 성리학자인 간재 전우(田愚)(1841-1922)가 그의 말년(末年)을 이 곳 외로운 섬 계화도의 양지마을에서 보내면서 수천의 제자를 가르치고 배일사상(排日思想)과 애국심을 불러 일으켰던 곳으로 그의 사당(祠堂)과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가 남아있다. 【참고문헌】 전라북도, 1990, 『문화재지』 【비고】 19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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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벽산생가(碧山生家)는 백촌 김문기(白村金文記)의 14대손인 순국선열 벽산 김도현(碧山金道鉉)의 생가이다. 임란시 군사감정(軍資監正)으로 선조를 호위했던 10대조 김응상(金應祥)이 1580년경에 건축하였다고 하나 이것은 18세기 이후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사랑마루는 원래 온돌방으로 고미반자 천장이 남아 있으며 그 앞의 사랑 뒷방은 원래 사랑마루로 하방에 마루설 끼웠던 홈이 있으며 천장도 연등천장이다. 또 웃방의 앞쪽 1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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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재로(1682-1795)의 자는 仲禮, 호는 淸沙이다. 1710년 春塘臺試 문과에 을과로 합격하여 世子侍講院 說書(세자를 가르치는 일)를 시작으로 관직에 나가 내외의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나 1740년 영의정에 오른 이후 1758년 관직을 떠날 때까지 네 차례에 걸쳐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현재 시립박물관에는 한국본과 중국본 영정 2점이 보관되어 있는데 51세때 모습을 그린 한국본은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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