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위인선현유적

Category Path : Korean Heritage Category » 위인선현유적
Subcategories : 생가 | 순절지 | 탄생지 |
Words Count : 136

명사|||문화유산 김동삼(金東三)의 본명은 김배식(金背植), 호는 일송(一松)인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고종(高宗) 15년(1878)에 이곳에서 태어나 1907년 고향에 협동중학교를 설립하고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되자 1911년에 만주로 건너가 남만주 통화현에서 이시영, 이동녕 등과 함께 교포의 안정책과 교육 문제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1913년에는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였고 3·1운동 때에는 한족회를 조성하고 서로군정서를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고하도 유적지는 충무공 이순신이 1597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08일 동안 주둔하였던 곳으로서 특히 이 곳은 이순신이 군량미를 저장하였던 곳이며 현재는 그 사적(事蹟)을 기념하는 비(碑)가 있다. 이 비와 비각(碑閣)은 조선 경종 2년(1722) 8월에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이 건립하였다. 고하도는 일명 “고로도(高露島)”라고도 하며 목포 대안(對岸)에 길게 누워 마치 함선과도 같다. 【참고문헌】 문화재..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조선 哲宗時의 勸臣 金炳冀의 생가로 99칸 중 71칸이 남아 있는데 조선 후기 사대부의 가옥의 모습을 별다른 변형 없이 볼 수 있으며 後園의 임야에는 4代 선조의 墓所가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경기..

Read more

|||문화유산 손영학(孫永學)은 평소 조국독립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던 중 1919년에 전국적으로 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동지와 더불어 길안면 장터에서 400여 명의 농민들과 협력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고 주재소를 습격했으며 그후 상해로 보낼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체포되어 2회에 걸쳐 10년을 복역한 후 출옥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지금까지 생사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손영학 생가는 정면 6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참고문헌】 문..

Read more

|||문화유산 조지훈 생가(趙芝熏生家)는 정침(正寢)과 관리사(管理舍)로 나뉘어져 있다. 주곡리 입향조 조전(趙佺)의 아들 정형(廷珩)이 인조때 건축한 것으로 정침은 구자형(口字形), 팔작지붕 목조와가(木造瓦家)이고 정면 7칸 측면 7칸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의 양반가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관리사는 일자형 목조와가 4칸으로 되어 있고 그 중앙에 대문이 있으며 대문과 중문에는 한말부터 약 일척평방의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터는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330-1번지에 위치하며,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좌진은 조선조 고종 27년(1890) 11월 24일(음력) 김형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6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라던 그는 7세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지산 김복한으로부터 사사받았다. 그는 18세가 되던 해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남녀 노복에게 논과 밭을 나누어 주었으며, 호..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