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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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권람(權擥, 1416∼1456)은 세조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으로 찬성사(贊成事)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찬성(贊成) 권제(權?)의 아들이다. 문종 원년(1450)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을 거쳐 이듬해 교리(校理)로서 『역대병요(歷代兵要)』를 함께 편찬하던 수양대군(首陽大君)과 뜻이 통하여 그의 참모가 된 뒤 양정(楊汀) 등 무장을 포섭했다. 단종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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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남면 종촌리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약 2.2㎞ 정도 가면 나성리 마을이 나온다. 임난수 신도비는 나성리 임씨 가묘 앞에 위치하고 있다. 신도비의 화강석재를 가공하여 제작한 너비 125㎝, 두께 25㎝, 높이 50㎝의 방형 대좌위에 높이148㎝, 너비 69㎝, 두께 28㎝의 비신을 올리고 있다. 비신 상단부에는 옥개형의 이수를 올렸는데 이수는 높이 45㎝, 너비 110㎝, 두께 82㎝이다. 신도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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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김직손(1437-1493)은 조선조 제8대 성종 때의 문신이다. 그는 나이 26세인 1463년(세조 9)에 사마시(司馬試) 생원에 급제하고 이어서 1469년(예종 1)에 추장문과(秋場文科)에 급제하였다. 이 신도비의 비문은 율곡 이이(李珥)가 지었는데 김직손의 손자인 김계(金啓)가 황해도의 관찰사로 있을 때 조부의 청을 받아 율곡에게 부탁하여 지은 것이다. 비신(碑身)의 석재는 오석(烏石)이며 크기는 높이 1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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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윤조원은 선조 36년(1603)에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병조의 좌랑을 거쳐 광해조에 북청·익산 등지의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치적을 남겼고, 황해감사로 승진되었으나 모함으로 유배되었다가 8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풀려났다. 만년에 고향인 제천 고명리 백암동에 낙향하여 살았다. 부모에 효도가 극진하고 가문을 잘 다스려 수차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살다가 인조 14년(1636) 12월에 운명하였다. 무덤은 윤관찰사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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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시발(李時發, 1569∼1626)은 문신으로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진사 대건(大建)의 아들이며 이덕윤(李德胤)의 문인이다. 선조 22년(158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에 등용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박춘무(朴春茂)를 따라 공을 세웠으며 선조 29년(1596) 10월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였다. 장락원정(掌樂院正), 형조판서를 지내고 북변을 방어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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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장운익은 조선대의 문신으로 자는 萬里, 호는 서촌, 본관은 덕수이며 장추의 父로 선조 12년 사마시를 거쳐 1582년 式年文科에 장원하여 공조좌랑, 예조정랑 등을 지내고 1591년 양양부사로 재직중 정추의 일당이라 하여 귀양, 1592년 임란이 일어나자 풀려나왔다. 후에 다시 병조판서가 되었다. 비대석은 높이 94cm로 하부에는 3구획으로 하여 운문, 중부에는 4구획으로 하여 안상, 비신은 높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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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최치원은 신라말기의 학자이며 자(字)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시호는 문창후(文昌 侯), 경주 사량부(慶州沙梁部) 사람이라 전한다. 12살에 당에 유학 17살 때 과거에 급제 선 주표수현위(宣州漂水縣尉)를 거쳐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를 받았다. 그는 난세에 절망하여 각지를 풍류하였교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이 비는 현대에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에서 건립한 것이다. 비고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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