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신도비

Category Path : Korean Heritage Category » 신도비
Words Count : 354

명사|||문화유산 영천리 마을 입구 전 430∼3번지에 위치한 유적으로 고경명(1533∼1592)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대사간 맹영의 아들이다. 관은 임진왜란 때 60세의 노인으로 유팽노(柳彭老)와 함께 의병 6천여 명을 거느리고 선조행궁에 있는 평안도로 가고자 북상하다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 비는 귀부 비좌에 가첨석을 얹혀 놓았다. 비의 크기는 높이 236cm, 폭 88.5cm, 두께 40cm이다. 【참고문헌】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김선치신도비(金先致神道碑)는 고려 충숙왕과 공민왕 시대의 무신인 김선치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김선치는 충숙왕 때 전라도에 침입한 왜구 격퇴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공민왕때 홍건적 침입시 서경의 부고(府庫)를 잘 지켜 난이 평정된 후 1등공신이 되었다. 그는 이어서 계림부윤이 되어서 미제 사건을 해결하여 상성군(尙城君)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이 신도비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대구 판관인 이징해(李徵海)가 고려..

Read more

|||문화유산 한원군(韓原君) 이만유의 신도비로 마을의 주택 담 곁에 반 정도 묻힌 상태로 있다. 비문은 1864년에 우의정을 지낸 이경재(李景在)가 지었으나 이때 바로 비를 세우지 못하고 1876년에 담양 부사로 부임한 김성진(金成鎭)이 주선하여 주민 및 후손들의 도움을 얻어 세웠다. 【참고문헌】 김동수, 1995, 〈담양지방의 유교문화 유적〉, 『담양군 문화유적 학..

Read more

|||문화유산 정기룡의 신도비는 그의 구국제민(救國濟民)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귀부와 비좌를 마련하여 비를 세우고 이수를 얹은 일반적인 형식으로, 비석의 전면 상부에는 “정공신도비명(鄭公神道碑銘)”이라 했다. 비문은 전, 후면 36행으로서 송시열이 찬하고 이세재가 글을 썼으며 김수증이 새겼다. 비를 세운 연도는 숭정기원후 73년 즉 숙종시대이며 비문에는 정기룡 장군의 행적과 임진왜란시대의 일들이 기록되어 ..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