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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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찬(撰)하고 김수증(金壽增)이 쓴 것으로 1639년에 건립하였는데 장방형의 비대석은 네 귀를 모접이 하였고 상변은 몰딩하였으며 비개석은 팔작지붕형으로 되어 있다. 비의 높이는 2m, 폭은 80cm, 두께는 20cm. 【참고문헌】 용인군지편찬위원회, 1990,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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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하연의 신도비로 장방형화강암 지대위에 烏石의 비신을 세웠으며 가첨상을 올려 놓았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1.93m, 폭 69cm, 두께 42cm로 비문은 남지(南智)가 짓고 김교직(金敎直)이 書와 전(篆)을 했다. 현 신도비는 그의 사후 488년이 경과한 1940년 10월에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시흥시, 1995, 『시흥의 문화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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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신용개, 신발(申撥), 신양, 신익상(申翼相)의 신도비이다. 원래 남양주 선영하(先塋下)에 있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긴 것이다. 신용개(1463-1514)의 자는 개지, 호는 二樂亭, 申叔舟의 손자. 成宗 19년 별시 문과에 급제. 시호는 문경(文景). 신도비의 비문은 이행(李荇)이 찬(撰). 이수를 포함한 비의 총 높이는 256cm, 폭 85cm, 두께 20cm. 신발(1523-1616)의 자는 제백(濟伯), 신용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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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세렴(1593∼164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선산, 호는 동명이다. 광해군 8년(1616)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예조좌랑을 거쳐 정언이 되었다. 이때 폐모를 주장하는 자를 탄핵하다가 곽산으로 유배되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기용되어 황해·함경·평안감사를 거쳐 호조판서가 되었다. 사후 문강이라 시호하였고 이 곳에 묻혔다. 신도비는 아무 무늬없는 대석을 만들었는데 비신의 길이가 길고 개석은 기와지붕 형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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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신도비는 백암리 황골 마을 뒤인 탕정면 용두리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한다. 현재 비는 대좌를 설치하지 않고 암반 위에 세웠는데 비신과 옥개형의 이수는 화강암으로 이루져 있고 비신과 이수는 분리되어 있다. 숙종 43년(1717)에 세웠다. 【참고문헌】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91, 『충남지역의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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