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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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예산군 신양면 소재지에서 32번 도로를 따라 4km 정도 가서 신양교에서 32번 도로가 갈라지는 도로 옆 귀곡리 수조리 마을 앞에 신도비가 위치한다. 정인기는 정조 때에 태어나 순조 17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길주목사를 지냈다. 비는 화강석재로 된 장방형 대좌위에 비신을 올리고 그 위에 옥개형 이수를 올려 놓았으며, 비신과 이수도 화강석재로 되어 있다. 비의 총고는 242cm이고 대좌의 규모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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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부여군 남면 내곡리 1구 마을 오른쪽에 자리한 신도비는 동절사에서 제향하고 있는 이지례의 신도비이다.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는 신도비는 시멘트로 만든 기단 위에 방형의 화강암으로 만든 기단을 놓고 대좌·비신·이수를 세웠다. 대좌는 복련을 조각한 방형으로 석재는 화강암이다. 대좌 위에 세워진 비신은 오석으로 전면에 비문을 음서하였다. 이수는 여의주를 놓고 서로 먼저 차지하려는 듯 구름을 헤치는 두 마리의 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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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박회수(정조 10년;1786-철종 12년;1861)는 본관이 반남인데 박태상의 5대손이다. 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진향부사, 고부사 등의 자격으로 청나라에 세 번이나 다녀왔다. 글씨를 잘 썼다. 시호는 숙헌. [頭篆] 贈領議政 行左議政 謚肅憲 朴公神道碑銘. 정원용 짓고 박제승 씀. 크기: 높이 199cm, 폭 72cm, 두께 44cm. 이 신도비는 본디 경기도 양주 조암동에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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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송영구 신도비는 그의 묘 근처 길옆에 세워져 있다. 건립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이정귀가 비문을 찬하고, 송준길이 비문을 썼다. 또 비문의 내용에 백사 이항복과 추포 황신의 몰후에 찬한 것으로 명기되어 있어 1619년에서 1635년(인조 13) 사이에 비문을 짓고 썼으므로 1619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영구의 자는 인수(仁첤), 호는 표옹(瓢翁) 또는 일표(一瓢, 혹은 白蓮居士)이다. 1584년(선조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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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가정 이곡과 그의 처 김씨묘 사이에 신도비가 있다. 옛날 비는 비 머리가 연꽃을 엎어 놓은 것 같다. 전체 높이 4.5m 폭은 1m 두께 33cm이며, 비문은 하륜이 찬하고 음기는 이자사가 썼다. 비각이 하나 더 있는데 맞배지붕에 외문이 있다. 가정의 비문에는 ‘가정선생문효공지묘(稼亭先生文孝公之墓)’라 되어 있고, 처 김씨묘의 비문은 ‘가정선생문효공리곡처(稼亭先生文孝公李穀妻) 변양현군함창김씨지묘(邊陽懸君咸昌金氏之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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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조병기[순조 21년(1821)-철종 9년(1858)]의 자는 경주(景胄)이고 호는 소석(小石)이다. 조부는 조진관이며, 부친은 조인영이다. 1845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장령, 이조참의 등의 직을 거쳐 개성부 유수가 되었다. 1855년에 황해도 관찰사에 이어 오위도총부 도총관, 사헌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며, 1857년에 우참찬으로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죽자 빈전도감당상(殯殿都監堂上)을 겸직하다가 빈전도감 막사에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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