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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경주 읍성의 초석과 장대석의 일부가 동부동 40-6번지 민가에서 정원석으로 이용되고 있다. 집주인은 이 석재들을 다른 곳에서 옮겨 왔다고 하나 크기나 재질로 보아 경주 읍성의 초석과 장대석인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1996, 『경주시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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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자연암반위에 대석을 정치(定置)하고 편단석(扁單石)을 올려 반원의 홍예(虹霓)를 구축하였다. 홍예재료(虹霓材料)는 화강암(花岡岩) 각재이며 전후, 양측의 다리 벽(壁)은 자연잡석(自然雜石)을 난적(亂積)한 것이나 홍예(虹霓) 머릿돌 위에는 비교적 규격이 큰 정형의 각석을 배열하였다. 홍예(虹猊) 석축 위는 상승각도가 완만한 부토층으로 되었고 난적석벽은 더욱 길게 전후로 연장되어 양안상의 도로와 연결되어 있으며 홍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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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석사자는 원래는 경북 의성군(義城郡) 단촌면(丹村面) 관덕리(觀德里) 사지(寺址)에 있던 것이다.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의 상층기단 갑석 네귀에 암수 한쌍씩 네 마리의 돌사자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1쌍은 잃어버리고 나머지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존하는 두 석사자는 모두 마멸이 심하여 각부 조각의 세부를 분간하기 어려우며 더욱 이 숫사자는 파손되어 절단된 2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모양을 추측하면,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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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공식명] 仁川監理署址. 인천에 감리서가 설치된 것은 1883년 8월 19일(고종 20년)로서 초대 監理仁川港 通商事務에는 趙秉稷이 임명되었고, 건물이 건립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감리서 설치 즉시로 추측됨. 감리의 임무는 각국 영사와의 교섭과 租界에 관한 업무 등 港內事務 일체를 관장하는 것이었으며, 경찰권과 군사권(화도진에 대한)도 장악하고 있었다. 갑오경장으로 인하여 지방제도가 개편됨에 따라 1895년 5월 26일(고종 32) 감리서가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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