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폐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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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공식명] 高城乾鳳寺址. 건봉사는 금강산의 가장 남단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법흥왕 7년(520)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원각사(圓覺寺)가 그 효시이다. 민통선 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세인의 출입이 없었으나, 지금은 많은 신도의 출입은 물론 불사 역시 한창이다. 건봉사에 대해서는 1977년도 『건봉사본말사적』이 발간된 바 있다. 대웅전, 적멸보궁, 산신각 등은 근년의 건축물이고, 적멸보궁 뒷편의 부도군, 능파교 주변, 불이문(不二門)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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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사지(寺址)에는 삼층석탑(三層石塔)이 있었으나 군청 뒤의 3·1공원 입구에 이전(移轉)되었으며, 1964년 4월 12일 청동범종(靑銅梵鍾)을 비롯하여 토기 조각 2점, 토기호(土器壺) 2점, 철부(鐵斧) 1점이 함께 출토된 바 있다. 이 동종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높이 63.7cm, 구경(口徑) 41cm 크기의 고려 말기 동종이다. 【참고문헌】 강원도·횡성군·강원향토문화연구회,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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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나한리 사지는 나한리마을 속칭 장자골에 있다. 유적은 이 나한 1구 마을의 뒷산자락에 위치한다. 마을에는 일제 때 개창된 나한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에서 북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 유적지가 위치한다. 이곳은 해발 130m로 5-6단의 계단식 경작지로 되어 있다. 사지로 추정되는 곳의 규모는 동서 40m, 남북 35m 정도이다. 외견상으로 볼 때 구조물이나 건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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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에바다 기도원으로 들어가는 소로를 따라 들어가면 기도원 우측으로 약 200m 정도 올라간 곳에 이 마을의 상수원이 있다. 이 상수원 앞쪽의 깨밭이 옛 절터이다. 절터는 서향으로 이곳에는 삼국시대까지 올려 볼 수 있는 와편들이 산재하고,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이 간간이 보인다. 동쪽에는 낮은 축대가 무너진 채 흙에 덮여 있다. 상수도 남쪽의 50m되는 지점의 밭 뒤쪽으로 축대가 있는데,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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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산중턱의 약간 기울어진 경사면에 대략 500여평 정도의 대지가 있다. 암자터로 5단의 축대를 쌓았던 흔적이 있다. 축대는 많이 무너져 있는 상태이나 길게는 10m, 짧게는 5m 가량 남아 있다. 현재 건물의 흔적은 축대 외에는 찾을 수 없고 바닥에 건물의 부재로 이용했던 몇 개의 장대석이 있다. 도수암이 소실 된 후 축대의 윗쪽에 초가로 된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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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무왕(神武王) 4년(684) 여름에 망덕사가 완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망덕사는 사천왕사지 건너편에 있다. 당군(唐軍)이 침입할 때 사천왕사를 짓고 비법으로 물리치자 당에서는 그 사실을 알기 위하여 사신을 파견했다. 사천왕사를 보이지 않기 위해 급히 망덕사(望德寺)를 새로 지어 속였다. 당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우리는 절을 지어 당황제 만수를 빌었다’라는 거짓 구실로 당사(唐使)를 속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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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일명 번적사지(蕃積寺址)로 불리는 이 절터는 현재 태백시 절골 유원지로 들어가는 입구 다리를 바으로 지나 민가들이 들어서 있는 일대에 위치한다. 절골이라는 명칭은 이 절 외에 심적·묘적·은적암 등 여러 절이 있었던 연유로 생겨난 것이라 전한다. 현재 이 절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전혀 없어 당시 사찰의 창건과 변천 과정, 폐사 시기 등 그 내력의 전모는 살필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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