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폐찰지

Category Path : Korean Heritage Category » 사지 » 폐찰지
Words Count : 752

명사|||문화유산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이 부왕(父王)인 문무왕(文武王)의 유지를 이어받아 2년(682)에 완공한 절로 현재 거대한 삼층석탑 2기가 남아 있다. 1959년 발굴조사에 의하면 중문(中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기단석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초석이 놓인 자리만 확인되고, 금당(金堂)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기단은 이중기단이다. 북쪽에는 기단석과 계단석이 남아 있다. 금당의 바닥은 방형대석을 이중으로 놓..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삼화사, 중대사 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관음사는 관련 기록이 자세하지 않아 그 연혁 등은 상고할 수 없고, 다만 『진주지』에 “관음사는 중대사 서쪽 10리에 있으며, 옛날에 폐지되었다.”라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 현재 구 사지에 대한 현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전반적인 현상을 파악할 수 없으나, 지금도 옛 절터가 남아 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최만희, 1963, 『진주지』;관동대학교박물관, 1996,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금강사지는 장창곡 입구인 서남향을 한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하는데 부근에 금광뜰과 금광못이 있어 이 곳이 사지로 추정된다. 『삼국유사』 권5 〈명랑신인조(明朗神印條)〉에 의하면 금광사는 원래 신인종(神印宗)의 시조 승려 명랑(明朗)이 살던 곳으로 살던 집을 절로 개조하고 불상과탑, 금당을 모두 황금으로 장식하였기 때문에 금광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1977년 금광못 안에서 큰 절터가 발견되었는데 당시 주춧돌이 줄지어..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중상골의 남동편에 있는 대지암골(大地岩谷)의 지류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사지(寺址)이다. 현재 축대가 3단으로 남아 있으나 그 외의 유구(遺構) 흔적이나 유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경주시, 1979, 『경주남산고적순례』, 95. ;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1986, 『경주지역문화유적보존개발계..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대흥사는 태백산 정봉하(鼎峯下)에 왕고(往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그 후 고려시대 하승(何僧)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순조 2년(1802)에 예조 완문(禮祖完文)이 사찰 경계에 표지를 세우고 구역을 표시하여 절을 수호토록 하였으나 절은 퇴락하고 법당만 남았던 것을 1963년 울진 동림사 법당으로 이전하고 현재는 사지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울진군, 1984, 『울진군지』 193. ; 울..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둔방 1리 서북쪽에 있는 안창말의 절터골이라 불리는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 잡목에 쌓여 있어 현황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의 기하학적 문양이 있는 평와편(平瓦片)이 산재되어 있다. 【참고문헌】 강원도·횡성군·강원향토문화연구회, 1995, 『횡성군의 역사와 문..

Read more

|||문화유산 배실은 포석계(鮑石溪)의 지류로서 냉곡(冷谷) 암봉에서 시작하여 서북쪽으로 약 1.3km 흘러 내려 포석정지(鮑石亭址) 동쪽에서 본류에 합치는 계곡이다. 황금대와 부엉더미를 형성하는 바위산맥이 험준하게 계곡의 동쪽면을 막고 솟아 있으므로 절묘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이룬 골짜기이다. 이 계곡에 절터가 세 곳 있다. 기암골 사지①에서 본류를 따라 350m 쯤 들어가면 계곡 한 가운데 기암골사지③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제1사지..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