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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별다른 자료가 없어 그 연혁은 자세하지 않다. 사당의 사량문에 개국 523년 갑인(1914)이라고 흑서되어 있음을 보면 월농군 이수인이 1872년에 부조를 명받았으나 오랫동안 건사하지 못한 채 지내다가 1914년에 건립했지 않은가 여겨진다. 이수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참고문헌】 이영문·정기진·윤종균, 1993, 〈영광군의 고고학유적〉Ⅰ, 『영광군 문화유적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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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안향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고려 시대의 명신. 학자로 호는 회헌(晦軒), 시호는 문성공(文成公)으로 興州(지금의 順興) 사람이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주자학을 받아들인 주자학도. 묘당의 전체 면적은 약 1, 500여 평으로 입구에 ‘安子廟’라고 새긴 비석이 서 있고, 소슬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팔작지붕에 내부 전체를 붉은 단청을 한 3칸의 한옥이 있다. 【참고문헌】 시흥군지편찬위원회, 1988,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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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일명 하음사(河陰祠)라고 칭하며, 강성군(江城君) 봉석주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후손들에 의해서 숙종 20년(1694)에 건립되었다. 봉석주는 세조 때의 정난공신으로 본관은 하음(河陰)이며 활을 잘 쏘았으며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공을 세워 강성군에 책봉되었다. 그 후 반역죄로 몰려 김처의(金處義)·최윤(崔潤) 등과 함께 주살되었다. 연산군 때 자손들의 상소로 관직이 회복되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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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중국 後漢의 關羽를 숭배하여 奉祀하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 의해 호국신으로 서울에 남, 동 관왕묘가 만들어지고 구한 말에 다시 서, 북에 설립되었다. 용산에 있는 관제묘는 남쪽에 만들어진 관왕묘로 일명 南廟地라고도 한다. 원래는 임란 후에 건립되었으나 6.25 때 전소되었다. 1957년에 재건했으나 현재는 그 정문이 되는 形蹟만 남기고 동작구 사당동으로 이전하였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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