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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좌리공신(佐理功臣)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 김수온(金守溫)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당초 보은읍 종곡리에 있었으나, 현종 5년(1774)에 송시열(宋時烈)이 현지로 이건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익공 목조 맞배집으로 소슬삼문과 토석혼축의 담장이 갖추어져 있다. 김수온은 세조, 성종 때의 학자로 세종 23년(1441) 문과에 급제, 성종 2년(1471)에 좌리공신의 호를 내리고 영산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벼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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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사도 세자가 비운의 죽음을 당한 후 정조 즉위년 원동암의 촌로들 꿈에 현몽함을 계기로 제단이 처음 마련되었다가 순종 대에 사묘로 건립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 중건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건물 내에는 중앙에 오석(烏石)으로 된 황제(皇帝) 위패가 있다. 【참고문헌】 이해준, 1986, 〈무안지방의 유교문화유적〉, 『무안군의 문화유적』 ; 전라남도, 1986,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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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숙종 2년(1676) 동락서원이라 사액을 받았으나 고종 8년(1871) 훼철된 후 1932년 중건되어 여헌 장현광(旅軒張顯光)의 위패와 경정을 봉안 향사하다가 1933년 만해당 장경우(晩海堂張慶遇)를 종향,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향사는 매년 봄, 가을로 봉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구미문화원, 1992, 『구미의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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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文忠公 趙浚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 규모는 정면이 3칸, 측면이 1.5칸이며 지붕은 조선 기와에 모로 단청을 하였으나, 원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1943년에 1차 보수를 하고, 1978년에 재건되었다. 文忠公 趙浚은 고려말 충목왕 2년(1346)에 출생하여 조선 태종 5년(1405)에 사망하였다. 자는 明仲, 호는 松堂이고, 본관은 평양이다. 후에 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文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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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丙子胡亂 때 三將軍인 宣世網 閔泳 許完이 이 곳에서 胡兵에게 패하자 아군측 병사와 부녀자와 함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落花岩에서 投身自殺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어명으로 삼장군의 善戰至忠을 찬양하여 廟를 건립하고 국가에서 연 1회 제사하다가 大院君 때 중단되었다. 그 후 부락민이 제사를 지냄. 精忠廟銘에 光武 四年 庚子 十月初二日 午時 立柱上樑이라 한 것으로 보아 廟銘을 지은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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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 인조반정 때 공신 월성군(月城君) 김원량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김원량의 자는 명숙(明淑), 호는 율촌(栗村)인데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제자로서 인조반정 때 크게 활약하였으며, 그 후 호조좌랑에 있다가 사헌부 지평(持平)이 되었고, 이괄(李适)의 난 때 김자점(金自點)의 상소로 잡혔다. 그 후 인조가 남한 산성으로 피난할 때 처형당했으며 현종 때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월성군에 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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