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사묘


명사|||문화유산 남영의공단사(南英毅公壇祠)는 숙종 1년(1675)에 인동에 거주하는 영의공 남민의 후손 남금일(南金一)의 주창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는 자손들에게 발문수의(發文收議)하여 영산북쪽기슭에 축담(築坍)하고 단사를 지었다. 1958년에 남민의 후손 상길등에 의하여 공의 실묘(實墓)를 찾아서 다시 기분(起墳)하고 비석과 의물(儀物)을 새로하여 묘전에 바치고 단사를 폐하였다. 이 단사내에는 1687년에 건립한 공의 입갈이 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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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한말 광무 4년(1900)에 고종이 창설하게 한 것으로 본래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순사한 洪啓薰, 李耕植 두 사람을 위시하여 국가를 위해 전사한 충신열사를 모시고 1년에 2번씩 弔祭를 거행하던 招魂壇이다. 이보다 앞서 영조 중엽부터는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南小營이 있었다.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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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격암 별묘는 격암 남사고를 모시는 곳이다. 헌종 3년(1837)에 본손(本孫) 남명옥(南命玉)과 방손(傍孫) 남치붕(南致鵬)과 더불어 별묘를 북평에 창건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로 퇴락되어 승사손(承祠孫) 남우현(南禹鉉)이 근족(近族)과 더불어 1965년에 행곡리 율곡에 이건하였다. 【참고문헌】 울진군, 1984, 『울진군지』, 216. ; 울진문화원, 1996, 『울진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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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팔계군(八溪君) 정종영(1513-1589)의 별묘는 후손들이 영조 5년(1729)에 건립한 사당이다.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과, 재실(齋室)의 기능을 하면서 묘역 및 사당 관리를 위한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당은 부속건물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건축되었으며, 건립 이래 번와와 단청같은 부분적인 보수이 이루어졌을 뿐 그대로 보존되어 왔으며, 부속건물은 사람이 거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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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경모사는 1958년에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덕산인(德山人) 정승(政丞) 황언필(黃彦弼), 도승지(都承旨) 황정문(黃正文), 병사(兵使) 황구수(黃龜壽), 승지(承旨) 황위(黃偉), 고산(孤山) 황기노(黃耆老), 장군(將軍) 황귀서(黃貴瑞)를 모신 곳이다. 【참고문헌】 선산문화원, 1994, 『선산의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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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임진왜란(壬辰倭亂)시 54세(1598년 11월 19일)로 전사한 충무공(忠武公)의 영추(靈樞)를 육지에 모신 곳이며 순조(純祖) 32년(1832) 공(公)의 8대손 통제사(統制使) 이항권(李恒權)이 순국지소(殉國之所)에 선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유허비(遺墟碑)와 비각(碑閣)을 건립한 후 거성(巨星, 충무공)이 떨어진 곳이라 하여 이락사(李落祠)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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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금호사(錦湖祠)는 최사침을 비롯하여 그의 여섯 아들을 배향한 사우이며 최초의 창건은 1723년 현재의 대호동 대안마을에 세워졌고 현재의 위치에 복설된 것은 1920년이다. 사우의 건물 구성은 사당, 강당, 내삼문, 외삼문 등 4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사심(羅士沈)은 16세되던 해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봉양함으로서 위기를 넘겨 어머니의 병이 쾌유되었다. 1544년에 명정(命旌)이 있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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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1917년 인천 이씨 문중에서 선조들이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청강 이승을 주벽으로 창사하였고, 1962년에 사우를 신축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에 맞배지붕이며 현재의 건물은 1975년에 중수한 것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이해준, 1989, 〈장흥지방의 유교유적〉, 『장흥군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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