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사묘


|||문화유산 임진왜란 때 많은 적을 무찌르다 1593년 진주 싸움에 참전하여 진주성이 함락될 무렵 김상건과 촉석루 아래에서 남강에 몸을 던져 장열하게 순직한 영의정 김천익의 사우(祠宇)이며 나주에서 1910년 경에 옮겨 왔으며 매년 음력 6월 28일 제사를 지낸다. 본각에는 이완용이 친히 새긴 화수각이란 현판이 있고 교지도 보관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에 사용했던 우산대가 유존하고 있다. 화수각은 담을 토담으로 쌓았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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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덕진동 건지산에 위치하며 전주 이씨의 시조 신라 사공(司空) 이한공의 묘소이며, 태조왕은 수호군을 두어 이 곳 건지산 묘성일원을 지키게 하였으며 그 후 역대왕들도 계속 이의 보호에 정성을 다 하였을 뿐 아니라 특히 영조 47년(1771)에 단을 세우고 고종 황제도 광무 3년(1899) 5월에 단을 중수하고 당상관을 배치하여 연 1회 제사를 지내게 하였고 단을 중심으로 4,455,000㎡(450정보)에 단역으로 삼아왔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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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사직단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선산읍지』의 단묘조(壇廟條)에 의하면 선산 관아의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0리 지점인 지금의 죽장리에 있었다. 그러나 조선말엽에 없어지고 지금은 사방(社坊)이라는 마을 이름만 전해오고 있다. 사(社)는 토신이요, 직(稷)은 곡신으로 옛날에 제후가 될 때 반드시 사직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어 국가와 존망을 같이 하였다. 사직단은 신라 37대 선덕왕(780-785)때 처음으로 세웠으나 지방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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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임진왜란이 끝난뒤 명장 유정이 선조 32년(1599) 정월에 부(府)내 동문밖에 터를 마련하여 관운장의 소상과 비를 세운 것에서 비롯된다. 숙종 42년(1716)에는 본부 유지 박내정이 동문성 내에 누각을 세워 소상과 석비를 옮겼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왜군과 일전일퇴로 싸움을 하던중 밤이 되어 하늘에서 수천의 신병이 나타나 왜군을 물리쳤다. 신병을 거느리고 나타난 장군은 관운장이었고 이에 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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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598년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하자 이곳 주민들이 공의 충절과 위훈을 기리고 자손만대에 교훈으로 남기고자 그 이듬해인 1599년에 이 사당(祠堂)을 세웠다. 착량(鑿梁)이 보이는 언덕 위에 초옥을 짓고 공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어 매년 음력 11월19일 기욕제(忌辱祭)와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냄으로써 충무공 사당의 효시가 된다. 고종 14년(1877)에 충무공의 10세손인 이규필(李奎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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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용궁 김씨 문중에서 상론 끝에 1936년에 창건(創建)하였다. 1728년(영조4년) 이인좌(李麟佐), 정희량(鄭希亮)의 난이 일어났을 때 백의한사로 창의하여 반군의 괴수를 섬멸하여 양무원종 1등공신으로 채록된 퇴장암(堆藏庵) 김중원공(金重元公)의 추모 향사소이다. 매년 음력 3월 28일 석채의례를 봉행(奉行)한다. 유물으로는 장검 몇점이 전해지고 있으며 사우 3칸, 강당 4칸, 정문 3칸이 현존(現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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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경주 이씨(慶州李氏) 시조(始祖) 이당(李唐)의 4대손인 공장공 이극증(恭長公 李克增)의 사우(祠宇)로서 조선 성종 25년에 불조묘(不?廟)를 하명(下命)하여 세워진 것이다. 춘추(春秋)로 두번 향사(享祀)하는데 사당 건물은 전면 3칸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의 맞배집이다. 이극증은 우의정 인손(右議政 仁孫)의 아들로 1468년에 익절공신(翊截功臣) 2등으로 광주군(廣州君)에 봉(封)해졌고, 성종 1년 이판(吏判)에 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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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임진왜란때 김문열은 진주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황무민(黃武愍)은 금산에서 혈전 끝에 순절하였고, 신의계(愼義溪)는 5만여 명을 살렸는데, 이들의 공로를 조정에서 알고 철종 7년(1851)에 충효사를 건립해 주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전라북도, 1990,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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