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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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대원군 척화비는 조선 고종 8년(1871) 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으로 홍성군 구항면 오봉리에 위치한다. 비석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 먹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卽和 主和賣國)”라는 12자를 큰 글자로, 그 옆에 “우리들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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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신창 초등학교 입구에 있다. 원래 방치되어 있던 것을 동리 주민들이 옮겨놓았다. 비에는 “양이가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의인데, 화의를 주장함은 매국이다”라고 써 있다. 화강암의 비신과 비좌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47cm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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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척화비는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이 신미양요를 치른 후 백성들에게 서양에 대한 강한 항전의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서울 및 전국의 요충지에 세웠던 비이다. 척화비의 내용은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인데 이 척화비는 윗부분이 깨어져 ‘양’자와 ‘즉’자가 없어졌다. 1976년 2월 29일 석교동 노상 하수구 뚜껑으로 있던 것을 발견한 것으로 높이 108cm, 폭 47cm의 크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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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설천면(雪川面) 노량리(露梁里) 399번지 김창경씨 소유의 남창연쇄점 담밑 노상(路上)에 방치되어 있는 이 척화비(斥和碑)는 조선 고종 3년(1886)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8년(1891)의 신미양요(辛未洋擾)의 두 양이(洋夷)의 침범을 물리친 대원군이 쇄국과 천주교 탄압의 뜻을 굳게하고 전국요소에 국민의 경각심을 높여서 협력을 촉구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높이 1.65m, 폭 0.49m, 두께 0.15m의 방형석(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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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청도 척화비(淸道斥和碑)의 비문은 앞면에만 쓰여 있으며 비석의 개석은 없다. 고종 8년(1871)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요충지에서 양인을 배척하기 위하여 세웠던 비석 이운데 하나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두차례의 서양인들의 침략을 물리쳐 승리한 대원군은 외적을 배척하기 위한 표시로서 척화비를 전국 각지에 세웠다. 고종 19년(1882)에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우리나라가 각국과 통상하게 되자 대부분의 척화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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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척화비는 조선말 고종 8년에 전국의 요새지에 건립된 비로 높이 1.15m, 넓이 0.5m의 크기이다. 이 척화비는 한양으로 통하는 구로의 외진 곳에 있는 자연석에 새겨졌으며 잡초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1882년 각국과 국교를 하게 되자 모두 철수되었지만 다행히 이 비는 철거 대상이 되지 않고 비문도 명료하며 원형도 수난의 자취는 약간 있으나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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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조선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요(丙寅洋擾), 고종 8년(1871)의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각각 겪은 대원군은 쇄국과 천주교 탄압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하고, 국민의 경계심과 협력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 요소에 세운 비석이다. 높이 1.2m의 비에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계아만년자손병인작신미립(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戒我萬年子孫丙寅作辛未立)”이라 새겨져 있다. 한일합방으로 일본에 의해 전국 대부분의 척화비가 훼손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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