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묘비

Category Path : Korean Heritage Category » 묘비
Subcategories : 묘갈 | 묘표 |
Words Count : 304

명사|||문화유산 김천석[선조 37년(1604)-현종 14년(1673)]은 조선 후기 문신이다. 안창리 김제남 사당의 뒷산에 묘가 있으며, 갓석을 갖춘 묘비와 묘갈이 있다. 묘갈은 1695년(숙종 21년, 숭정후 68년)에 세웠는데, 좌의정 송시열(宋時烈)이 찬하고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 김수증(金壽增)이 전액(篆額)과 비문을 썼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높이 185cm, 폭 81cm, 두께 29cm이다. 묘비는 갓석을 갖추고 있으며 ..

Read more

|||문화유산 이세정(1435∼1518)은 마로면 기대리에 처음 내려와 산 삼산 이씨(三山李氏)의 시조인 이백(李?)의 현손이며 조선 연산군 때 학자였다. 연산군 때 청도군수(淸道郡守)를 지내다가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戊午史禍)로 고향인 보은에 귀향을 오게 되었다. 이후 중종 13년(1518)에 복직되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현재 마로면 기대리 산 2번지에 묘소가 있다. 묘갈은 이고선(李固善)이 지었다. 【참고문헌】 ..

Read more

|||문화유산 박양은 집의 신함의 아들이며 온의 아우. 성종 23년(1492)에 문과에 급제, 공조 좌랑, 승문원 교리, 춘추관 기주관 등을 역임하였다. [前面] 有明朝鮮 朝散大夫 吏曹正郞 承文院校理 春秋館記注官 忠州朴公諱良之墓 配淑人 星州李氏附左. 크기: 높이 170cm, 폭 40cm 【참고문헌】 『대..

Read more

|||문화유산 송상민(인조 4년;1626-숙종 5년;1679)은 송시열의 문하생으로 호는 석곡,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숙종 5년(1679) 복상 문제로 싸운 송시열의 2차에 걸친 예론에 대한 소를 왕에게 올렸다는 죄로 탄핵을 받고 장사했다. 후에 공조좌랑에 추증되었으며 효행으로 정문을 받았다. 저서에 우곡봉사가 있으며 남간사에 배향되었다. [前面] 有明朝鮮 贈承訓郞工曹佐郞 石谷宋先生之墓 配宜人 順川朴氏附左. 송치..

Read more

|||문화유산 송화수(명종 1년;1546-선조 38년;1606)는 세훈의 아들로 호는 聽竹堂, 증직은 병조참판. [前面] 有明朝鮮 贈嘉善大夫兵曺參判兼同知義禁府事 聽竹宋公樺壽榮老之墓 贈貞夫人 星州李氏附左 壙誌 潭堂李植所撰. 이의길 짓고 송형필 추기 김구 씀. 크기: 높이 144cm, 폭 62cm, 두께 33cm 【참고문헌】 『대..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