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피장자가 알려진 묘

Category Path : Korean Heritage Category » 무덤 » 피장자가 알려진 묘
Words Count : 269

명사|||문화유산 김옥춘은 선조 때의 김해인으로 선무원종 2등공신이요, 효종 때 가선대부 중추부사의 관직과 대직을 받았다. 부자가 모두 공신으로 옥춘공은 당시 지현들의 내왕이 잦았으나 귀가 먹은체 하고 오로지 청빈하게 살았다. 공신의 후손들이 정성으로 현충사를 세워 이 두 부자와 석춘유성의 삼위를 모셨고 춘추2회로 형제를 올리고 있다. 이 묘는 사환마을 중앙산에 소재하며 노송과 상록수가 울창하게 둘러싸고 있다. 묘 앞에는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마산시 회원동 무학농장에 있는 묘소로 김공은 선무원종 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이다. 1565년(명종 22년) 11월 25일 김해부 북문 외답곡에서 탄생, 1583년(선조) 3월에 문과에 급제, 1590년 일본 통신부사 종사관이 되었다. 1591년 2월 파수 목사 재임시 임진왜란이 있었으나 공은 왜적토벌에 큰 공을 세우고 1594년 6월 충주 목사 재임시 왜군의 재침이 있었을 때도 공을 세웠다. 1605년 공의 공적을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노수신(盧守愼)은 조선시대 중종 10년(1515)-선조 23년(1590) 시대의 사람으로 1543년 문과에 급제하고 초시,회시,전시에 연달아 장원하여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퇴계이황(李退溪)과는 학문을 통해 친근한 사이였다. 그는 을사사화때 파면당하여 순천, 진도(進度) 등으로 유배되어 19년간 귀향살이하고 선조(宣祖) 즉위 후에 누명을 벗고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이조 판서(吏曹判書)겸 대..

Read more

|||문화유산 임진왜란때 김해를 방어하다가 순사한 이대형(李大亨)의 묘소이다. 일반민묘 규모에 지나지 않으며 묘비에는 “가선대부호조참판관천이선생지묘배정부인고창오씨부(嘉善大夫戶曹參判觀川李先生之墓配貞夫人高敞吳氏)”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신(碑身) 높이 1.05m, 폭 0.54m, 두께 0.23m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Read more

|||문화유산 조방(趙)의 자(字)는 극정(克精), 호(號)는 두암(斗巖)으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창의(倡儀)하여 적을 물리쳐 그 공을 조정에서 표하고저 하였으나 “신하가 나라를 위하고 자식이 어버이를 받드는 것은 사람의 도리인데 어떻게 받겠는가” 하고 사양했으며 죽은 뒤에라도 혹 이런 일이 있으면 자식들에게 받지 못하게 했다.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이 되고 장암리(長岩里) 용화..

Read more

|||문화유산 오광휘(吳光輝 1170-1230)의 자는 수원(收元), 호는 송천(松泉)으로 고려 명종 23년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신종 2년에는 상장군이 되었으며, 고종 4년에는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에 책록되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고 함양부원군에 봉해졌다. 함양 오씨의 시조로 회동마을 뒤에 묘를 정하였으며, 1979년 후손들이 서주리 회동마을 입구에 신도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함양군, 1996, 『문..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1896년 의령면 동동(東洞) 1105번지에서 출생하여 1919년 2월 28일 이종(姨從) 이화경(李華卿)과 함께 상경하여 3·1운동에 가담하고 1919년 3월 14일 의령 장날에 참가했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감옥에서 2년 4월간 옥고를 치루고 1924년 일본요인(日本要人) 암살에 가담하여 4년의 옥고를 치루고 1928년 상해 임시정부 자금 모집에 헌신하다가 1946년 당시 51세로 사망하였다. 현재 유적 및 유족..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