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피장자가 알려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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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강흡(姜洽)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정오(正吾), 호는 잠은(○隱)이다.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그는 어려서 신흠(申欽)에게 학문을 수학하고 인조 8년(1630)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시직부율등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항복으로 끝나자 심장세(沈長世), 홍석(洪錫), 정양(鄭瀁), 홍우정(洪宇定)등과 함께 태대백산 춘양리에 은거하며 절개를 지켜 후손들은 이들을 태백오현으로 추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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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선치는 고려 충숙왕(忠肅王)대의 무신이다. 그는 충숙왕 5년(1342)에 낭장(郞將)으로서 전라도(全羅道) 도순문사(道巡問使) 유탁(柳濯)을 따라 왜구를 격퇴하였다. 공민왕 때에는 홍건적이 침입하자 도원수(都元帥) 이암(李)을 따라 서경에 이르러 부고(府庫)를 불태우라는 이암의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김선치는 만약 부고를 불사르면 적이 군량을 얻기 위해 오히려 전국에 침입하리라 판단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여 명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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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박권묘는 호적동 명봉산 능선 끝에 자리잡고 있는데, 묘역에는 묘비와 문인석 2기, 촛대 2기, 상석 등이 있으나 주변이 유실되어 우측의 문인석이 쓰러져 있다. 비석은 일부가 파손되었고, 20여년 된 소나무와 잡초에 덮여 거의 폐묘가 되었다. 묘비는 숙종 41년(1715)에 건립하였으며 이여가 지었다. 크기는 높이 180cm, 넓이 76cm, 두께 30cm으로 갓석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강원도·원주시·강원향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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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오하근은 1897년 10월 15일 출생하였다. 그는 한학을 수학하다가 1919년 독립만세 사건이 일어나자 박인서(朴仁緖)와 함께 영주, 봉화 양군민을 동원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마포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였다. 출옥후에도 항시 애국지심이 지극하여 향리(鄕里)의 학동에게 국가관과 애국심을 철저히 지도하였다. 묘는 단경 4.5m, 장경 4.9m의 봉분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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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임진왜란 때 경주, 언양 경계에서 적병과 접전하여 전공을 세웠고 다음해 영천에서 적을 쫓다가 팔공산에 이르러 크게 이겼으며 화왕산에서는 곽재우(郭再祐) 막하에서 적군을 대 파하였다. 후에 조정에서는 종삼품훈련원첨정(從三品訓練院僉正)을 제수하였다. 순조 10년(1810) 그를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금호사(琴湖祠)가 건립되어 현재까지도 자손이 수묘(守廟)하고 있고 그의 묘에는 고종 11년(1874)에 군수 어충중(魚充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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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성재 금난수(琴蘭秀)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그는 명종(明宗) 16년(156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참봉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과를 올렸다. 선조(宣祖) 29년(1596)에 성주 판관(星州判官)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고 선조 32년(1599)에는 봉화 현감에 임명되었으나 하루만에 사임하였다. 후에 좌승지(左承旨)에 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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