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무덤


명사|||문화유산 강익(姜翼 1523-1567)선생은 조선문종때의 학자로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 본관은 진주이며, 조식의 문인으로 명종 21년(1566)에 유생 33인의 소두(疏頭)으로 상소하여 정여창을 신원하게 한후 학문연마와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선조초에 천거를 받아 소격서참봉에 임명되었다. 남계서원을 창건하였다. 【참고문헌】 함양군지편찬위원회, 1995,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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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병표는 1876년 8월 27일 예천군 지보면 만화리에서 출생하였다. 일찌기 한학을 닦아 향내에 문사가 널리 알려졌다. 당시의 예천에서 부호였던 그는 가산을 털어 수차에 걸쳐 거액을 상해 임시정부로 보내고 또 37만원을 모금하여 만주의 독립군과 상해 임시정부로 밀송하기도 했으며 독립운동에 많은 공을 남겼다. 묘에는 상석이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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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뇌계 유호인(1445∼1494)은 김종직의 문인이고 문과에 급제, 합천 군수로 재직 중 병사했다. 시, 서, 문장에 뛰어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고 특히 성종의 총애가 지극하였다. 장수의 창계 서원(蒼溪書院), 함양의 남계 서원(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뇌계집』이 있다. 묘비문은 당대의 문명(文名)을 떨친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1470∼1550)]이 합천 군수일 때 지었고 비석은 기해년(1959)에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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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득춘(李得春)은 성산 이씨 내곡파(乃谷派)의 시조로 조선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김면(金沔), 곽재우, 박학암(朴鶴岩)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군량미를 공합하고 아들 동길을 김면과 같이 출전시켜 왜적을 물리쳤다. 이득춘 묘는 내상리 옥담마부락 뒷편 양지바른 계곡 옆에 성산 이씨의 묘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윗쪽에 자리잡고 있다 묘 앞에는 단기4287년(1954)에 후손들이 세운 비와 단이 세워져 있다.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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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장진우는 1866년에 예천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장 신태식(申泰植), 종형(從兄) 장진성(張進聖)과 더불어 군자금, 군량미 등을 조달하고 의병 소집에 힘썼다. 고종 인산(因山)에 이응수(李應洙) 등과 상경하여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4개월만에 석방되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자금모금차 입국한 김찬규(金燦奎)를 비롯 장세명(張世明) 등과 의용단을 조직하여 간부로 활약하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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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허위(1885-1908)는 조선 고종때의 의병장으로 호는 왕산(旺山)이며, 경북 선산 출신이다. 그는 1897년 이은찬, 조동호, 이기하 등과 의병을 일으켜 금산, 성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고종의 내밀봉서를 받고 자진 해산하고 귀향했다. 이듬해 참봉, 성균관박사 중추원의관 등을 지내고, 1904년 의정부 참판이 되었으며 1905년 을사조약 반대 격문을 돌리다 체포되었다. 그는 1907년에는 이인영 등과 원주에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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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조선 말 高宗 26년(1889)에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로 號는 古下이다. 1915년 일본 明治大學을 졸업한 후 귀국하여 金性洙와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한편 1917년부터 중앙중학교장으로 육영사업에 헌신했다. 3.1 운동 때는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을 지도하여 옥고를 겪기도 했다. 1921년 東亞日報社 사장으로 취임했다가 일제의 압력으로 사직하고 또 만국기독교청년회 주최 태평양회의에 조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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