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무덤


|||문화유산 박경래는 조선 고종 11년(1874)에 나서 고창 수성군진(守城軍陣)에 투신하였는데 을미조약이 체결되자 의거, 장성의 기참연부대(奇參衍部隊)의 포사대장(砲射大將)으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모두 20여 차에 걸쳐 일군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1909년 부안 상서에서 일본 기병대와 싸우다가 잡혀 옥중에서 음독 자살하였다. 묘역은 660㎡(200평)인데 3단의 상탄을 조성하고 봉사하였으며 주위에는 196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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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시대 문신인 이산포 묘는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에 위치한다. 이산포는 조선 중종 34년(1539)에 태어났으며, 자는 중거이고, 호는 명곡, 본관은 한산이다. 이색의 7대손으로 내자사정 이지무의 아들이다. 명종 22년(1567)에 사마시를 거쳐 선조 1년(1568) 증광문과에 급제, 벼슬길에 올라서 해미현감 등을 지내고 순안어사로 북도를 순찰, 이조 정랑 등을 역임하였다가 동인들의 탄핵을 받아 종부사정으로 좌천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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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가정 이곡(1298-1351)은 고려 말의 이름난 학자로 자는 중부(中父), 호는 가정(稼亭),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이자성의 아들이고 목은 이색의 아버지이다. 일찍이 원나라 과거에 급제 한림국사원 검열관이 되어 중국 학자들과 교류했다. 귀국 후 정당문학이 되었으며 그 뒤 한산군에 봉해졌다. 뛰어난 문장과 오묘한 뜻으로 중국 학자들을 탄복시켰다. 대학자 이제현과 함께 편년강목을 증수하고,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3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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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원조는 1919년 3·1 독립운동 때 이천에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고 독립군 자금을 모집하던 중 1919년 12월 28일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미결수로 있었고 2년 후 수형(受刑) 10년 복역 중 1922년 4월 15일에 옥사하였다. 1963년 3월 1일 대한민국건국공로 훈장을 받았다. 묘역은 약 33㎡이며 상석과 묘비가 있다. 【참고문헌】 충청북도, 1982,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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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창선은 고종 32년(1895)에 보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이준영(李準永), 이인하(李寅夏), 김용석(金用石) 등과 함께 ‘만세경고문’을 만들어 사방에 배포하고 동지 수백명을 규합하여 삼봉산(三峰山)에서 만세를 불렀다가 주동자로 왜경에 체포되어 1년 3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나 3년만에 석방되었다. 묘소는 길상리 1구와 2구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이 약 50㎡(15평) 정도이며, 봉분의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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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고려조 여진족 정벌시 순국한 대장군 여림청(呂林淸)의 묘로서 함양 여씨 묘표음기(墓表陰記)는 삼송(三宋)의 한사람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俊吉(1606-1672)]이 현종(顯宗) 6년(1665)에 지었다. 함양 여씨, 함양 오씨, 함양 박씨는 삼동서지간으로 토성이다. 【참고문헌】 함양군, 1996,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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