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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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자연암반에 장방형의 대좌를 마련하고 그 앞에는 연꽂 무늬가 조각된 비이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비문의 내용은 갑사의 내력에 대한 기록이다. 비문의 마지막 부분에 숭정 17년 갑신 후 16년 기해 9월 일 세웠다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 효종 10년인 1659년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신의 높이는 225cm이고 너비는 133cm, 두께는 49cm이며 비의 개석은 사모 지붕의 형태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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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尹殷輔(世祖 14년; 1468-중종 39년; 1544)는 조선조의 문신으로 자는 商卿, 본관은 海平인데 成宗 25년(1494) 별시문과에 내과로 급제, 사관에 뽑혔고 이듬해 校檢으로 춘추관 기사관을 겸직,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 시호는 靖成으로 이 비는 귀부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갔으며 이수를 갖추고 있다. 嘉靖 30년(1551)立이라 되어 있는 이 비의 높이는 2.8m, 넓이는 88cm, 두께는 25cm로 洪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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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대흥사의 창건 유적을 기록한 비문으로 원래 영조 19년(1743))에 건립되었던 것인데 그 뒤 정조 11년(1787)에 다시 추록하여 건립하였다. 비명은 ‘조선국 전라도 해남현 두륜산 대둔사 사적비(朝鮮國全羅道海南縣頭輪山大芚寺事蹟碑)’이다. 귀부와 가첨석을 지닌 총 높이 4.6m 의 대형 사적비로서 비문은 채팽윤이 짓고 썼다. 전면에는 사적을 후면에는 지주, 연화질을 새겼다. 귀부는 귀갑문이 없는 것이 특이하며 생동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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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예수교 교회 영수인 윤영복(尹永福)은 3월 중순 이래 전국 각지에서 독립의거가 일어나자 여기에 발맞추어 이곳에서도 의거를 단행할 것을 결심하고 3월 18일경 동 교회의 같은 영수인 오용간(吳用干)과 그의 친족 형인 동 교회 교사 윤영만(尹永滿)을 찾아갔다. 이들 3인은 오용간집과 동 교회당에서 밀회를 거듭하면서 거사를 의논한 끝에 많은 동지를 규합하여 3월 22일 덕성리시장 장날에 거사하기로 약정하였다. 윤영복과 오용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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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연종학(延鍾鶴)은 조선 개국공신 곡산부원군 연사종(延嗣宗)의 후손이다. 그의 아내는 성주 이씨 이동수(李東秀)의 딸로 어려서부터 정숙하였다. 시집과 시부모를 잘 섬기고 남편에게 공순하였다. 헌종(憲宗) 11년(1845)에 마을에 괴질이 퍼져 남편이 전염되어 위독하자 자신의 왼쪽 무명지를 잘랐으나 피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안쪽 마디를 두번 세번 자르니 피가 솟구쳐 남편 입에 흘러 넣자 소생하여 백년해로하였다. 나라가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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