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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categories : 사직단 | 정업원 및 부속건물 | 종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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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부여읍 소재지의 남쪽에 위치한 궁남지는 속칭 ‘마래방죽’으로 불리는 곳인데 1965∼1967년 사이에 실시된 복원 공사 이전까지만 해도 자연적인 저습지로 알려졌던 곳이다. 궁남지라 함은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연유된 것인데 백제 본기 무왕 35년조에 보면 “천지어궁남 인수이십리 사안식이양류 수중책조서 의방장선산”이란 기록이 있다. 즉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리 밖에서 물을 끌어 들였으며, 연못가에는 버드나무를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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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민도리집이다. 3칸 거실에 1칸 다락이 붙어 있고 중앙 2칸과 후면 3칸은 각각 퇴마루로 개방하였다. 내부 4칸은 通間으로 되었으나 경우에 따라 1칸씩 구분할 수도 있게 되었다. 周廻한 흙담의 일부에는 塼築한 것도 있다. 이 건물 측면에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집이 있어 의두각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대량의 가구가 특수하여 2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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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덕수궁의 外正殿인 중화전 정문으로 정면 3間, 측면 2間의 多包系 八作집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단청을 하였고 지붕의 각 마루에는 양성을 하고 雜像, 龍頭 등을 얹었다. 이 문은 4단의 石階 위에 세워져 있는데 석계를 3등분하여 중앙면 좌우에 石獸 조각과 중앙판상에는 쌍용문이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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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고적 15호. 경기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 시대의 왕궁 터. 누문(樓門)·전각(殿閣)의 초석(礎石)만 남아 있으나 그 규모가 굉장하고 다른 서울의 궁전과 달리 높은 지대를 이용한 것이 특색이며, 여러 문을 거쳐서 정전이 있었다. 궁전은 고려 말기에 소실되었다. 만월대 석사자상의 머리는 만월대에 있던 궁전 입구의 양측에 배열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 당시의 전와가 많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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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 시대 순조의 생모 緩嬪 박씨의 靈所인 慶佑宮의 터이다. 조선 고종 21년(1884) 갑신에 개화당 김옥균 등이 고종을 이 궁에 파천시키고 守舊黨을 살육한 후 개화파 정부를 세운 곳으로 유명한데 해방 후 휘문고교의 운동장이 되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손성우 편저, 1973, 『한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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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조선 고종이 탄생한 집으로 12세까지 이 집에서 자라 철종의 대를 이어 입승대통함으로써 그 생부 李昰鷹은 興宣大院君이 되고 이 집은 고종이 등극하자 한채 한채 보태어 지어나가 운현궁으로 불리우게 되었는데 여기서 대원군은 서원 철폐, 경복궁 중건 등의 사업을 했고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 때에는 이 궁에서 납치당하기도 했다. 현재는 덕성여대로 궁의 일부가 쓰이고 있으며 현재는 사랑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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