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공공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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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 말 고종 27년(1890)에 건축된 벽돌로 된 르네상스식 건물로 설계는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e)이 했다고 한다. 6.25 동란 때 불타 탑과 지하 2층이 남아 있었으나 1973년 다시 복원되었다. 이 건물은 특히 고종이 1896년에 세자(純宗)와 함께 옮겨와서 다음해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국왕이 궁궐을 버리고 외국 공관으로 피신했고 또한 이 播遷중에 친일 金弘集 내각이 무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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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한말 공업전습소 본관 건물로 목조 2층집이다. 1906년에 설립된 공업전습소가 典환局 산하의 시계시험소가 있었던 동숭동에 터를 잡아 교사 등 일련의 시설 중의 하나로 지은 건물이다. 설계는 탁지부 건축소의 일본인 기사가 하였다. 구조는 목조 2층 기와 이음 외벽 비늘판 붙이기의 르네상스식에 준한 양옥 건축이다. 규모는 연 302평이며 현재 얼마 남지 않은 한말의 건물 중 목조 건물로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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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전주 사고는 지금은 비록 남아 있지 않으나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다. 임진·정유의 선조국란 때 오직 전주사고에 보관되었던 전적(典籍)만이 유일하게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사고라는 것은 역사기록을 보존하는 창고를 말한다. 전주사고가 처음 설치된 것은 1449년(세종 21)의 일이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동년 6월초 사헌부에서 올린 상소를 계기로 춘추관에서 경상도 성주와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증설할 것을 상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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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가금면 가흥참까지의 거리가 30리로 다음 연결하는 곳은 상모면 수회리 수회참으로 역시 30리 거리이다. 이 곳에는 발장 1인과 발군 54명이 있었으며 현재 단월동 유주막의 취수장 일대에 있었다. 【참고문헌】 충북대학교박물관, 1985, 『충북 유적·유물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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