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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유간(柳澗) 강재열(姜再烈)선생이 법전(法田) 음(陰), 양파 강씨(陽派姜氏) 대종택(大宗宅)으로 세웠다 한다. 정면 5칸, 측면 6칸반 규모의 ‘口’자형의 집이다. 앞 면을 모두 사랑채로 구성하였으며 오른쪽에 난 문을 통하여 안채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안채 부분의 평면은 어간(御間)에 3칸의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앞쪽에 퇴간(退間)을 두고 퇴간 뒤로 왼쪽은 창고방으로 꾸몄으며 나머지 2칸은 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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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관산읍 방촌리 일동 마을에 위치하는 장흥 위씨의 고가로 1782년에 건립되었는데 건립당시 사당과 침실을 먼저 세우고 1800년에 외랑을 건립했다. 조선 후기 양반집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당과 안채 행랑채는 중수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나머지 건물들은 약간의 변형을 가져 왔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김지민, 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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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근암고택(近庵古宅)은 조선 철종 때의 실학자로 『전례고증(典禮攷證)』 등을 저술한 근암 유치덕(近庵柳致德)이 고종 7년(1870)경 건축하였다고 한다. 원래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었던 것을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그의 정자인 근암정과 함께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이 집은 ‘口’자형의 안채와 근암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동해문화사, 1995, 『경상북 문화재도록』 3, 353.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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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본 가옥은 1840년 건축된 가옥으로 여겨진다. 평면은 중앙의 안방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툇퇴와 우측 퇴칸을 포함하여 마래를 배치하고 우측으로 정지와 그 전면에 모방을 들였다. 정지와 모방 측면으로는 각각 땔감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갓방을 꾸몄는데 이 부분은 약 50년 전에 증축된 부분이다. 툇마루는 안방과 마래 앞쪽에 90cm 폭으로 설치하였다. 창호 구성중에 마래의 우측면에도 판장문을 설치한 사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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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영동 가는 법전면(法田面) 눌산1리(訥山一里) 신기마을에 있었으나 1900년 경에 이곳에 살던 같은 문중(門中)의 정윤흠(鄭允欽)의 3형제가 매입하여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한다. 이 집은 일자형의 솟을대문과 ‘口’자형의 정침(正寢)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5칸반 크기의 5량가이다. 정침의 평면은 앞쪽을 모두 사랑채로 구성하고 중문을 오른쪽 익사(翼舍)에 설치한 측면출입형(側面出入形)이며 안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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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현주인의 11대조(김세민 : 효종 3년(1652) 37세에 진사, 현종 14년(1673) 57세로 별세) 당시 가대를 정하여 300년 정도된 터전으로써 조선말에 건축되어진 ㅁ자 배치의 가옥이었으나, 지금은 많은 부분이 개·보수되었다. 현재의 가옥은 65년전 전면 중수하였으며, 몇 해전 현재의 주인이 생활의 불편으로 현대식으로 평면을 전면 개조하여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으나 외형은 일부 원형이 남아 있다. 집앞의 정면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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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집은 ‘ㄱ’자 형으로 헛간 다음이 안방이다. 안방의 앞쪽에는 반칸의 앞퇴간을 만들어 편리하도록 꾸몄다. 안방 다음이 넓은 부엌이고, 부엌의 부뚜막은 방쪽 벽에 있다. 여기에서 땐 불이 방고래를 한바퀴 돌아 다시 부뚜막쪽으로 나오면서 굴뚝으로 빠지게 된다. 부뚜막에 굴뚝이 설치되는 남방형의 유예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부엌 앞쪽에 있는 장독대는 두텁게 쌓은 낮은 맞벽으로 감싸고 있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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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안남면 도덕리 덕실마을에 있는 덕양 서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대청마루에는 ‘덕양서원’이란 현판이 걸려있고, 대청안에는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이 쓴 ‘덕양서당기’가 걸려 있다. 당초 이 서당은 약 200년 전에 유사부공(庾師傅公) 유극(庾戟)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여 서당을 짓고 ‘덕양서원’이란 이름지어 제자들을 모아 충효를 가르쳤다. 그 후 다시 지으면서 덕양 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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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안채 1동, 사랑채 1동, 대문채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모를 보면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고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목조와가(木造瓦家)이다. 박인기의 7대조인 박동식(1753∼1830)에 의하여 배산한 양명한 터에 입기하였다고 전한다. 집은 전체로 보아 트인 형이다. 급한 산록의 경사를 감안하여 안채와 사랑, 중문채를 따로 설치하여서 높이가 서로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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