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통일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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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예천 간방리 삼층석탑에서 북동쪽으로 약 7m정도 떨어진 민가에 탑재가 많이 보인다. 원래 탑재는 이 주변 일대에 널리 흩어져 있었으나 수해 이후 집을 짓기 위하여 이곳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집을 지으면서 일부는 집밑에 매몰시켰고 일부는 축대로 이용했다고 한다. 현재 노출되어 있는 탑재들도 일부가 매몰되어 있어 그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으나 옥신석으로 추정되는 것이 2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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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의성 관덕동석불좌상(義城觀德洞石佛坐像)은 머리의 나발(螺髮)은 마멸이 심해 분명치 않으나 육계가 상투처럼 작게 표현되어 있고 귀가 작으며 눈과 코끝이 파손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며 천의(天衣)는 몸에 얇게 밀착시켜 양 어깨에서 아래로 드리우면서 손목을 감고 가슴에 영락(瓔珞)을 둘렀는데 자락을 배 밑부분까지 연결하여 장식하고 팔목에 쌍 팔지를 끼는 등 보살상을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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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분황사 남북중심선에서 서쪽으로 36m, 석탑중심에서 남쪽으로 62m되는 지점에 분황사의 어느 유구로 판단되는 당간지주 1기가 남아 있다. 너비는 아랫부분이 70cm, 윗부분이 50cm이고 두께는 아래가 46cm, 윗부분이 30cm로 끝을 후렸다. 높이는 3.7m로 2매의 지주석은 70cm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배치하고 기단은 없어지고 귀부를 조각한 간대만 남아있다. 귀부는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고 목은 움추린 상태이며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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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금릉 서부동 폐탑은 일반형의 삼층석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 상륜, 3층이 없고 현재 초층과 중층의 부재만이 남아 있다. 남은 1층 옥개석은 위에 2단의 괴임이 있고 낙수면의 반전은 약하며 두께도 얇은 편이다. 옥개받침은 5단이다. 주변에는 일휘문(日暉文) 암막새 기와조각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기와편과 조선시대의 자기편들이 산재해 있어 탑을 조성할 당시에 사찰이 소재하여 후대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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