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통일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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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예천 간방동 삼층석탑(醴泉澗芳洞三層石塔)은 기단부(基壇部)는 파괴된 것을 모아 조성한 것으로 석재의 높이가 고르지 않아 탑신(塔身)이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상대 갑석(上臺甲石)부터는 본래의 것으로 각 옥신(屋身)은 우주(隅柱)가 각출(刻出)되어 있고 옥개(屋蓋)는 모두 상하 양면에 층단형(層段形)을 이루고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평박(平薄)하여 낙수면(落水面)은 완만하나 전각에서 반전(反轉)하였다. 상대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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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높이 1m에 넓이 3.3m호 두부(頭部)만 남아있었는데 주변을 조사하여 몸체를 찾아 복원하였다. 머리는 소발(素髮)에 커다란 육계(肉줗)가 이단으로 얹혀 있으며 이마에는 백호공(白毫孔)이 있는 형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거불(巨佛)이다. 【참고문헌】 전라북도, 1990, 『문화재지』 【비고】 1987년 4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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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경주 구정동 삼층석탑(慶州九政洞三層石塔)은 신라 통일 후 건조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3층석탑은 경주시 동쪽 남산의 칠불암 노변에 있는 개선사지(開善寺址)에 있던 쌍폐탑(雙廢塔) 중에서 동탑재를 운반해 오고 또 탑재 가운데 초층(初層) 옥개석은 이차사지(移車寺址)로부터 옮겨와 1962년에 재건한 것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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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탑은 2중 기단위에 삼층석탑이며 상량부는 유실되고 없다. 기단부는 전형적인 2중기단으로 지대석은 여러 개의 판석으로 깔고 하층 기단은 각구를 2기로 나누어 중앙에 탱주와 4우주를 모각하였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 1석씩으로 각층 옥신에는 우주가 얕에 조출되었고 초층 옥신은 약간 높은 편이며 또한 전후면 중앙에 문소형을 선각하여 그안에 쌍환을 세겼다. 초층 옥개석은 얇은 편이나 우동이 완만하고 전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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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慶州羅原里五層石塔)은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감은사지(感恩寺址), 고선사지(高仙寺址)의 석탑 다음가는 화강암 거탑(巨塔)이다. 이 탑은 2중기단 상하 각부를 별석으로 하고 각각 4매로서 구성하였다. 이 탑의 형식은 뒷날 탑의 규범이 되었다. 상하층기단 면석에 탱주(撑柱)를 하층 3주, 상층 2주를 두고 탑신부는 1층 옥신(屋身)에서 우주(隅柱)를 모각(模刻)한 4매 판석으로 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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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중상골의 남동편에 있는 대지암골(大地岩谷)의 지류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사지(寺址)이다. 현재 축대가 3단으로 남아 있으나 그 외의 유구(遺構) 흔적이나 유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경주시, 1979, 『경주남산고적순례』, 95. ;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1986, 『경주지역문화유적보존개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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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불상은 진주 금선암 본존으로 봉안되어 있다. 본래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원리 남사(南寺)의 폐사지에 묻혀 있던 것을 이 사찰의 주인 박수라는 할머니가 1957년 수습하여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으나 불상의 무릎과 대좌의 윗부분이 약간 손상되었다. 나발(螺髮)의 머리는 육계(肉)가 없으며 얼굴 상호(尙弧)는 긴 편이다. 코는 길게 표현하여 어색한 분위기가 있지만 입가에 고졸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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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높이 4.1m의 삼층석탑으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법당 안에 안치된 철불상의 명문에 의해 신라 경문왕 5년(856년)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설과, 연화좌대를 사용한 것과 전체 형태의 비례감과 조성 수법을 통해 신라 하대 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이 탑은 방형 지대석 위에 8각의 기단이 축조되어 있다. 기단의 하부에는 8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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