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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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남에서 북으로 흘러가는 남강지류(南江支流) 구릉상에 고분 3기가 각 300-500m 내외의 간격으로 서로 떨어져 있다. 그 중 1기는 3기 가운데 중앙에 위치하는데 봉토는 저경(底徑) 18m, 높이 5m이며 봉토 상면(上面) 중앙부가 붕괴되어 있는 것은 도굴로 파괴된 것이다. 북에 위치한 것은 봉토 저경이 10m, 높이 3m이며 나머지 하나는 봉토 저경 20m, 높이 6m이며 말산리(末山里)와 도항리(道項里) 고분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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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용화면 자계리 중자작마을 남서쪽 해발 615.2m의 갈창봉(葛昌峯) 정상부를 감싸고 설축된 테뫼식 토축 산성이다. 일명 할미성이라 부르며 현지인들이 봉화터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봉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동남방은 자연 암벽을 이용한 토축 산성으며 둘레는 약 450m 인데 거의 붕괴되었다. 6·25 동란 때 격전지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상, 539 ; 청주대학교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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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이 유적은 검단리 새검단 성원사 입구 도로변 능선 하단부에 위치한다. 고분의 개석으로 보이는 화강암 재질의 석재가 비스듬히 놓여 있으며 삼국시대 고분의 개석으로 보여지며 봉분의 형태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울산시·창원대학교박물관, 1995, 『울산군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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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봉화 관창리 사지는 관창1리 초방산마을 뒷산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사찰은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에 따라 한 권력자가 이 절의 승려를 몰아내고 폐사 시켰다고 전해진다. 밭으로 개간된 사지 주위에는 돌담과 계단석 일부가 남아 있다. 동서의 길이가 27.3m, 남북이 18.7m인 사지에는 위치로 보아 남향한 건물이 있었던 것 같다. 돌담은 자연 괴석과 인두대(人頭大)의 산돌로 쌓았으며 대부분이 무너지고 일부만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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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귀곡동 유적은 진양호의 동남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표토 아래 10∼15cm에 무문토기편 및 석기류가 분포하고 있으나 침수에 의한 삭평 및 교란이 심하여 유구의 확인은 어렵다. 유물은 공열토기 구연부편과 석착, 석겸, 반월형석도 등의 석기류가 수습되고 있다. 【참고문헌】 인제대학교가야문화연구소, 1997, 『진주시귀곡동유적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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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금성사는 부용산 일명 금성산(錦城山)의 이름을 딴 절로서, 신라 무열왕 때 품일(品一)장군과 아들 화랑 관창(官昌)이 백제를 정벌하기 위하여 출정할 때 이 곳 중강곡(中江谷)에서 야숙하게 되었고 관창은 황산벌에서 전사하였으나 품일 장군은 개선하여 돌아올 때, 이 곳을 지나며 관창의 명복을 비는 마음에서 사찰을 건립하여 ‘품관사(品官寺)’라 이름짓고 금성산을 품관산(品官山)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1946년 9월 20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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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동] 영취 산성//서천읍 남산리와 마서면 계동리가 만나는 곳에 표고 147m의 남산이 있다. 남산의 주봉에서 산등선을 따라 350m 쯤 동으로 표고 140m의 비교적 평평한 산봉우리에 산성이 위치한다. 이 산성은 정상부의 평평한 지형을 따라 구축한 토성과 그 외곽을 다시 넓혀 석축으로 쌓은 이중성이다. 정상부의 토성은 흙을 깎아내리는 삭토법으로 쌓았으나 남벽 20m 정도의 붕괴된 성벽은 돌덩이로 쌓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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