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기타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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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만동묘(萬東廟)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유교(遺敎)로 그 문인 권상하(權尙夏)가 숙종(肅宗) 29년에 세운 것으로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의 신종(神宗)과 그의 손자인 의종(毅宗)을 모셔 놓고 제사하고 있다. 이 만동묘는 조선 고종(高宗) 2년 대원군(大院君)에 의하여 철거(撤去)된 후 비(碑)만 남아 오다가 일제 때 땅속에 묻혀진 것을 최근 만동묘 구지(舊址)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비문은 일제가 고의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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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임진왜란때 신지제가 예안, 안동 겸관으로 있으면서 주왕산(周王山) 전투에서 전세를 가다듬고 팔공산성에 들어가 각 현령(縣令), 부윤(府尹), 부사(府使)와 한마음으로 사수하였으며, 또 순찰사 종사관(巡使從事官)이 되어 곽재우(郭再祐)와 동맹한 뒤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보국한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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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장지현장군의 전공을 기념하는 비이다. 장군은 영동읍 매현리에서 출생하고 임진왜란 때 왜장 구로다(黑田長政)가 추풍령으로 내침할 때에 현 사부리에서 대적하여 싸웠다는 전설이 있으며 1904년 경부선 철도부설공사 때 일본인이 비를 땅 속에 묻어 버리려고 하다가 현장에서 피를 토하고 즉사했다는 말과 그 후 1940년 경부선 복선공사 중 일본인 측량기사가 선로의 위치를 이 비가 서 있는 지점으로 통과하게 설계했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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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효자 강병관은 1905년(高宗38)에 강기락(姜基洛)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 봉양함이 극진하더니 불행하게도 29살의 나이에 병들어 죽게되었을 때 울며 말하길 “아직 내 아버님이 계시니 내가 눈을 감지 못한다”하고 죽었다. 그 후 그의 아버지가 병에 걸려 병석에 누운지 석달이 지나도록 온갖 약은 다 써도 낫지 않았다.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병석에서 꾼 꿈에 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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