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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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옥종면(玉宗面) 두양리(斗陽里)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전주(全州) 최공(崔公) 휘(諱) 연(涎)의 전거지(奠居地)로 400년전 전주(全州) 최씨(崔氏) 형제(兄弟) 수인(授印)한 구현(九賢)이 이곳 정자목(亭子木)에 구현(九賢)의 인(印)을 괘인(掛印)하고 목하(木下)에서 휴식공락(休息共樂)하였는데 정자목(亭子木)은 죽고 이곳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建立)하였다. 구현(九賢)의 괘인(掛印)으로 녹유(綠由)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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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한산백 조인벽(?-1393)을 제향했던 서원의 유허비인데 18대손 조효원이 전면 동명서원 유허비 7자를 쓰고, 후면은 조종필이 짓고 정학교(1832-1914)가 썼다. 비신은 1.37m×60.5cm×13cm, 비두(碑頭) 20cm×42cm×80cm이며, 비각은 정, 측 1칸의 맞배집이며 담을 둘렀다. 1899년 2월에 세운 것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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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제주도에 안치되었다가 뒤에 사사(賜死)된 김정(金淨)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 철종(哲宗) 3년(1852) 백희수(白希洙)가 세운 비이다. 김정(1486-1521)은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원충(元沖), 호는 충암(沖菴)이다. 김정의 적사(謫舍)는 성내(城內) 가락천(嘉樂川) 동안(凍岸)에 있었던 금강사(金剛寺)라는 황폐하고 작은 절이었다. 이 곳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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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암(행촌)은 고려 공민왕(恭愍王)때 우의정(右議政)과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한 충신으로 홍건적(紅巾賊) 침공시 큰 공을 세웠다. 이교(도촌)는 이암의 동생으로 공민왕때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역임하였으며 이암과 함께 고려조의 충신이다. 이들의 공적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고성향토수호지』 등 문헌에 의해 고증되고 있으며, 현재의 비는 조선 고종 36년경에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비신은 사각형으로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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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자현은 강릉 김씨 시조인 명주군왕의 21세손으로, 태종 4년(1404)에 강릉 경포에서 출생하였고, 호는 운곡이다. 김자현의 14대 조인 김예는 고려 건국공신으로 왕씨로 사성(賜姓)되었으며, 부친인 평의공 김지에 이르러 김씨로 복성되었다. 평의공의 다섯 아들 중 막내로 세종 29년(1447)에 중시 대과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사헌부 감찰에 이르렀다. 또한 강릉 향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세조 11년(1465)에 통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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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참전한 박광옥(朴光玉), 김덕령(金德齡), 오두인(吳斗寅)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의열사(義烈祠)의 유지(遺址)에 세워진 비이다. 비갓은 유실되고 없고 비신과 비좌만이 남아 있다. 비신에는 전면에 `義烈祠遺墟碑’, 후면에 `懷齋 朴先生光玉 特平 金先生德弘 忠壯公金先生德齡 楓岩金先生德譜 陽谷吳先生斗寅’, 측면에 `甲寅八月日’이라 음각되어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15cm, 너비 40cm,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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