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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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갈암 이선생 금양 유허비(葛庵李先生錦陽遺墟碑)는 높이 175cm, 넓이 60cm, 두께 30cm로 권상규(權相圭)가 찬하고 이시영(李始榮), 이희발(李熙發)이 서했다. 금양은 갈암 이현일(葛菴李玄逸)이 도학을 강론하던 장소로 그 터에다 단소와 비를 세운 것이다. 공은 사헌부와 경연직을 지냈으며 이조판서까지 올랐다. 【참고문헌】 안동시립민속박물관, 1995, 『안동의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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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영양 남씨 시조 영의공은 중국의 여남(汝南) 사람으로 성은 김씨요, 이름은 충(忠)이다. 당나라의 안렴사로 일본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데 풍랑을 만나 신라의 유린(有隣)에 표착, 충이 신라에서 살기를 원하니 경덕왕이 중국천자와 합의하여 충이 남에서 왔다하여 남씨로 하고 영양현을 식읍으로 하였다. 유린(有隣)은 진한땅으로 지금의 영덕 축산면이다. 이후 후손이 공의 충효대절을 기념하여 이곳에 유허비를 세워 추모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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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만도(李晩燾)는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을미사변(乙未事變)에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의 침략에 항거했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조약에 찬성한 간신의 처형을 상소하였고 그 후 4년이 지나도록 국권을 회복할 가망이 없음을 보고 1910년에 단식으로 사망하였다. 이 비는 그의 정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1946년 9월에 건립한 비로 비문은 김구(金九)의 친필이다.이 비의 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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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기한창(奇漢昌)은 광해군 때 영의정을 지내고 폐모론을 반대하여 귀양살이한 정신(正臣)이며, 인조반정 후 충절을 지켜 벼슬하지 않고 이괄의 난 때 (1624) 내응하리라는 혐의로 억울하게 사사되고 일족이 몰살된 만전(晩全) 기자헌(奇自獻 1562-1624)의 현손이고 기이해(奇以海)의 아들이다. 가문의 해를 피해 무주에 은거했다가 안의 상비에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그것을 기념하여 후손들이 1995년에 세웠다. 【참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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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도암 이재(李縡)[숙종 6년(1680, 경신)-영조 22년(1746, 병인)]는 본관은 우봉이며, 자(字)는 희경, 호(號)는 도암 또는 한천으로 진사 이만성의 아들이다. 그는 김창협의 문인으로 숙종, 경종, 영조 때의 문신, 학자이다. 그는 숙종 28년(170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07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부교리·북평사(무관직)·이조정랑·수원도호부사를 거쳐 형조참의·대사성·병조와 예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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