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선정비

Category Path : Korean Heritage Adminstration » 기록유산/서간류 » 금석각 » » 선정비
Words Count : 1098

명사|||문화유산 근대에 이 마을에서 살았던 수원 백씨 낙붕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그의 학문과 덕행은 이 고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후 가선대부 호조 참판에 증직되고 창선기적비를 세워 그의 덕행을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마산시, 1997, 『마산의 문..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구한말 읍삼부(邑三部)[(일동(一洞), 삼동(三洞), 북안(北安)]에 걸쳐 흩어져 있는 공덕비를 약 40년 전 이곳으로 옮겨와 모시게 되었다. 이 공덕비는 양산군 출신 관찰사 2명에 대한 행적과 11명의 당시 역대군수(歷代郡守)에 대한 덕행수도(德行修道)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13개의 비(碑)가 약 15평에 모아 세워져 있으며 1980년 5월 공덕비관리보존회에 서 35만원을 투자하여 재정비 보수하였으며 약 350년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하송리 예동마을앞 이평-신태인 사이의 지방도로 옆에 있는 2기의 비석 중 하나이다. 임술(壬戌)년에 세워진 것으로 이는 철종 13년(1862)이다. 비문은 마멸되었는데 진사 서한풍이 찬하고, 유학 유영원이 글을 쓴 것이다. 높이 166cm, 폭 24cm, 두께 17cm이다. 【참고문헌】 전라북도, 1990, 『문..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조선 18대 현종(顯宗) 4년(1663)이후 거제에서 재임한 부사(府使), 현령(縣令) 및 이곳을 순방한 어사(御使) 등의 선정애민(善政愛民)한 공덕을 찬양하기 위하여 읍민들이 세운 비석(碑石)인데 본래에는 거제면(巨濟면) 서정리(西亭里)에 산재해 있었던 것을 1971년 3월 군에서 그들의 공덕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왕래가 많은 기성관(岐城) 앞에 이설(移設)하였다. 그 후 1974-1976년 기성관 해체, 복원과..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이 비는 1860년 6월부터 1862년 2월까지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 도호부사로 재임했던 김세균(金世均 1812-1879)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1863년 2월에 건립하였다. 비석 몸돌은 청색 화강암으로 가로, 세로, 높이가 47 x 17 x 117cm이며, 팔작지붕 모양 비석 덮개와 방형 비석 받침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대구직할시문화원, 1994, 『대구의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이 건물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김해 김씨 비각이라 한다. 옛날 하동으로 가는 길목인 진주성 북쪽 성벽밑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거리를 ‘빗집거리’ 즉 ‘비각(碑閣)머리’라 부르고 있다. 비각 안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상현(金尙鉉)의 부인 정부인(貞夫人) 연안 차씨(延安車氏)의 시혜불망비와 그의 아들인 전의관(前議官) 김정식(金正植)의 시혜불망비 2기가 가지런히 서 있다. 이 비를 세운 내력은 진주성 안..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현재 동래 금강 공원에 있는 독진 대아문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비석은 임진 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성을 조선 영조 7년(1731) 동래 부사 정언섭이 다시 쌓은 공을 칭송하고 성을 쌓는 일을 분담하여 맡았던 사람들의 직책과 성명을 기록한 것으로 영조 11년(1735)에 세워졌다. 이 비석은 높이 273㎝, 너비 107㎝, 두께 45㎝의 큰 비석으로서 비석머리는 한 쌍의 이수(용머리)가 ..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