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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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1935년 6월에 건립되었으며, 김택림은 다음과 같이 공적을 기리고 있다. “명협절동군환자개산강장막통무천극간유아이후하모동번긍민노고권애빈번동견오정시달구규이일십만조급기자편의오민종견부궁만구개비영송후은(銘峽絶東郡環者皆山康莊莫通懋遷極艱惟我李候何暮東藩矜民努苦眷愛頻煩東遣五丁始達九逵以鎰十萬助給其資便宜吾民從見富躬萬口皆碑永頌厚恩)”. 【참고문헌】 정선군, 1971, 『정선군지』;강릉대학교박물관, 1996, 『정선군의 역사와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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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 인조 때의 문관으로 본관은 남원, 자는 자서(滋墅), 호는 서정(西亭)이다. 전대복(田大福)의 아들로 전대록(田大祿)에게 입양되었다. 선조 39년(1606)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나이 어리고 학문에 미급하다 하여 스스로 벼슬을 하지 않고, 고향에서 독서에 전심하다가 광해군 4년(1612) 정자(正字)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박사 김직재(金直哉)의 아들 백함(百緘)이 많은 무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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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 18대 현종(顯宗) 4년(1663)이후 거제에서 재임한 부사(府使), 현령(縣令) 및 이곳을 순방한 어사(御使) 등의 선정애민(善政愛民)한 공덕을 찬양하기 위하여 읍민들이 세운 비석(碑石)인데 본래에는 거제면(巨濟면) 서정리(西亭里)에 산재해 있었던 것을 1971년 3월 군에서 그들의 공덕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왕래가 많은 기성관(岐城) 앞에 이설(移設)하였다. 그 후 1974-1976년 기성관 해체, 복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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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칠곡 다부리 공적비(漆谷多富里功積碑)는 하천변에 방치되어 있으며 화강암계 석재를 곱게 치석한 비석이다. 전면에는 “후지덕 후지덕 내인민지무복 부사오후휘진영구세불망비, 민자이식기미 막차관군일년, 석적문양입(候之德候之德奈仁民之無福,府使吳候諱晋泳求世不忘碑民自以息其眉莫借冠君一年石積文良立” 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현길이 170cm,두께 15cm의 크기이며, 원래 우물가에 세워져 있던 것이 파괴되어 방치되어 있다고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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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1973년 문화재보호협회 진주지부에서 진주시내 각처에 산재하고 있던 관리가 소홀한 무연고 비석들을 모두 남성동 진주성내로 이전하여 온 것 들 중 하나이다. 성이성(1595∼1664)은 문신으로 자는 여습(汝習), 호는 계서(溪西)이며 창녕 성씨이다. 선정을 베푼 진주 목사로 이 비는 효종 10년(1656) 윤 3월에 세운 것이다. 【참고문헌】 진주시사편찬위원회, 1995, 『진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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