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위인선현유적


명사|||문화유산 조선 선조 31년(1598) 11월 19일 이충무공(李忠武公)이 노량(露梁)에서 소서행장(小西行長)의 적연합선단(敵聯合船團)을 맞아 싸워 200여척으로 도주하는 적선을 계속 추격하여 관음포(觀音浦)에 이르러 몸소 시석(矢石)을 날러 독전(督戰)하던 중 유탄(流彈)에 맞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하시고 전사(戰死)하였다. 이와 같이 관음포(觀音浦) 앞바다는 이충무공이 순국한 곳으로 이락포(李落浦)를 바라보는 연안(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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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원래는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慕華館이 있었는데 高宗 32년(1895) 高宗皇帝가 대한독립을 공포함에 따라 민간 단체인 獨立協會가 주동이 되어 建陽 元年(1896)에 慕華館을 헐고 대신 독립관을 세우고 대한독립을 기념하여 오다가 일정 때 무참하게 헐리었다. 【참고문헌】 손성우 편저, 1973, 『한국지명사전』; 서대문구, 1992, 『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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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동화면 동호리 동계 마을에서 동화면 소재지로 나오는 길에 김기(金紀)의 묘와 묘비 그리고 제실인 〈상의제〉와 강당인 〈숭인제〉가 함께 위치하고 있다. 김기는 황룡면 입향조인 숭조(崇祖)의 후손으로 1519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 전한(弘文典翰)을 역임하였으며 성품이 청렴결백하였는데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자 중종이 친히 묘자리를 하사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목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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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반계 유형원은 광해군 14년(1622)에 나서 일생을 실학 연구에 몰두하며 이상적 세계 건설을 위하여 힘썼다. 효종 4년(1653) 이 곳에 와서 농민을 보살피며 지도하고 백성을 편히 하는 것은 첫째 토지 개혁, 둘째 병농일치 제도 확립, 셋째 세제 정리, 넷째 상공업의 장려, 다섯째 공거래 실시 및 관아 정비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거주하던 약 330㎡(100평)의 지역에 와편과 초석이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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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丙子胡亂 때에 경상좌병사 許完과 閔泳이 胡兵과 싸우다 패망하자 적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근처의 부녀자 수백 명과 이 바위에서 떨어져 자결하여 이 곳을 落花岩이라고 함. 높이는 18.2m이다(청주조 참조).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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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달은 조선 중기의 한시인(漢詩人)으로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이며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그는 여말 선초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한 쌍매당(雙梅堂) 이첨의 후손인데 쌍매당은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고, 소설 『저생전(楮生傳)』을 지은 바 있다. 그러나 이달의 어머니는 천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첩의 자식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그의 배경 때문에 그의 재주는 쉽사리 세상에 빛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문장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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