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충효비/정문ㆍ정려


|||문화유산 조용하는 순창인으로 자는 윤집이며 문정공(文貞公) 염(廉)의 후예이다. 아버지의 병환에 단지주혈로서 효력을 보았고, 또 한 때는 자신의 병이 위중하여 부인 평택 임씨(平澤林氏)가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병을 고치게 하였다. 고종 때 지평 벼슬을 증직하고 부인과 함께 효자, 열녀의 쌍정문이 하사되었다. 【참고문헌】 충청북도, 1982,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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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임란때 의병으로 전사한 이팽수(李彭壽)를 기리기 위하여 정조때 정려(旌閭)를 명하여 건립한 것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에 사우(四隅)에는 활주(活柱)가 있고 지붕은 팔작이다. 안에는 귀부대석(龜趺臺石)과 이수를 갖춘 정려비가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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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열녀(烈女) 강유진(姜有眞)의 효열(孝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이다. 정려가 세워진 연대는 미상이며, 비는 정조 4년(1780) 2월에 세워졌다. 비의 전면에 `金海后人金昌佰妻孝烈晋州姜氏之閭’, 전면 좌측에 `乾隆四十五年二月0日’이라 새겨져 있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60cm, 상단 너비 39cm, 하단 너비 35cm, 두께 12cm이다. 강유진은 사노(寺奴) 김창백(金昌伯)의 아내로 일찌기 남편을 잃었는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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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문암리 제암 마을 입구 한양 조씨 세장산(漢陽趙氏世葬山) 기슭에 위치한 이 정려각은 고흥 유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하여 1798년에 세워졌다. 고흥 유씨는 조찬한(趙纘韓)의 처로 1592년 임진왜란 때 부군이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과 맞서 싸우고 부인은 미처 피신하지 못하여 집을 지키고 있다고 왜군이 쳐들어와 자신의 몸에 손을 대자 자결하여 정절을 지키니 이를 지켜보던 몸종도 부인의 뒤를 따라 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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