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충효비/정문ㆍ정려


명사|||문화유산 진주 강문 충효각(晋州姜門 忠孝閣)은 조선 중종 23년(1544) 청주목 산내이사연 부동리(淸州牧 山內二上面 釜洞里) 오늘의 청원군 미원면 금관리 가막동에 효행으로 정려된 매곡 강서(梅谷 姜瑞, ? )의 효자각에 숙종 38년(1712) 임진왜란 때 경기도사(京畿都事)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여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고 충렬공(忠烈公)이 된 그의 아들 사월정 강수남(沙月亭 姜壽男, 1552∼1592)을 합설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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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보령시 주산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미산 방면으로 2㎞ 정도 가면 서쪽으로 창암리 월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는데 이 입구에서 300여 m 들어간 곳의 남향 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정문은 산사면 하단부를 복토, 절단하여 약 50여 평을 조성한 뒤 세워졌는데 정려의 주변에는 철책을 돌려 보호 시설을 하였다. 건물 양식은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며, 양 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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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설천 북방에 위치한 이 효열각은 일찌기 밀양 박씨 종중 박희천(朴喜千)이 불교에 뜻이 있어 어릴 때부터 불경을 배우고 익혀 부근 불교 신도들의 협조로 고종 26년(1888)에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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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충정공 김익겸의 자(字)는 여남(汝南)이요, 1614년에 태어나 1636년에 생원(生員)으로 급제하였다. 청(淸)이 모욕적인 조건 아래 국교를 맺자고 하자 공은 청나라 사신을 목을 베자고 청하였으며 병자 호란이 일어나자 공은 강화도로 피하였다가 전세가 불리함에 김상용과 함께 남문에서 화약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다. 김익겸의 거룩한 충성에 눈물짓던 왕은 나라에서 그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강화 충열사와 연산 충곡사에서 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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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현종은 홍농읍 계마리에서 태어났으며, 남달리 충효가 뛰어났다. 1863년 철종이 승하하자 3년 동안 산에 올라가 통곡과 복재로서 보내니 국가에서는 1904년에 정려를 내렸다. 이에 문중에서 정문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홍농읍 금정산 하록에 있으며 정면 2칸, 측면 1칸의 와가로 내부에는 명정판액이 3매 있고 주위에는 홍살문으로 둘러 있다. 3문밖에는 효자 김현량과 처 김씨, 김종양, 김봉규의 처 이씨등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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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서포 이승간의 본관은 영주인데 사직 철동에 아들이다. 중종조에 집에 불이 나서 팔십이 넘은 노모를 불속에서 구출하려고 불속에 뛰어 들었다가 자신은 불에 타서 죽은 절세의 효자였다. 그 뒤 조정에서 효자 정려가 내리고 또 청계사에 향사하였다. 【참고문헌】 부안군, 1991,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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