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사묘/묘


명사|||문화유산 이 南廟는 東廟와 함께 서울에 현존하는 關王廟의 하나이다. 남묘의 본 명칭은 南關王廟로서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인 宣祖 31년(1598) 4월에 明의 유격장인 陣寅이 이번 왜란에 關羽의 靈이 나타나 도와주었다고 해서 그가 머물러 있던 남산 기슭에 묘를 세우고(현 용산구 도동) 그안에 關羽와 周倉의 초상을 모시게 된 데서 비롯된다. 건축 경비는 명의 楊鎬를 비롯한 明將들이 은을 바쳤으며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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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팔계군(八溪君) 정종영(1513-1589)의 별묘는 후손들이 영조 5년(1729)에 건립한 사당이다.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당과, 재실(齋室)의 기능을 하면서 묘역 및 사당 관리를 위한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당은 부속건물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건축되었으며, 건립 이래 번와와 단청같은 부분적인 보수이 이루어졌을 뿐 그대로 보존되어 왔으며, 부속건물은 사람이 거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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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북하면 중평리에 위치한 유적으로 하서 김인후(河西金麟厚)의 부조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묘액(廟額)은 문정묘이며, 신문(神文)은 집성문이라 부르며 창건 연대는 1832년이다. 김인후는 이조 인종 때의 명신으로 1540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수찬이 되었다. 을사사화 후 고향 장성으로 돌아가 성리학을 연구 하였다. 부조묘에는 인종이 친히 그려 하사 했다는 흑조도와 김인후의 친필 3종,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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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임진왜란이 끝난뒤 명장 유정이 선조 32년(1599) 정월에 부(府)내 동문밖에 터를 마련하여 관운장의 소상과 비를 세운 것에서 비롯된다. 숙종 42년(1716)에는 본부 유지 박내정이 동문성 내에 누각을 세워 소상과 석비를 옮겼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왜군과 일전일퇴로 싸움을 하던중 밤이 되어 하늘에서 수천의 신병이 나타나 왜군을 물리쳤다. 신병을 거느리고 나타난 장군은 관운장이었고 이에 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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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文忠公 趙浚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 규모는 정면이 3칸, 측면이 1.5칸이며 지붕은 조선 기와에 모로 단청을 하였으나, 원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1943년에 1차 보수를 하고, 1978년에 재건되었다. 文忠公 趙浚은 고려말 충목왕 2년(1346)에 출생하여 조선 태종 5년(1405)에 사망하였다. 자는 明仲, 호는 松堂이고, 본관은 평양이다. 후에 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文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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