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비(碑)[비(碑)][member]

Category Path : 비(碑)[비(碑)][member]
Words Count : 15

[국어사전] 명사 신라 진흥왕이 국토확장과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세운 기념비. 진흥왕대는 신라가 종전의 미약했던 국가체제를 벗어나 일대 팽창,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때이다. 6세기 진흥왕은 재위 37년 동안 정복적 팽창을 단행하여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완전 병합하였고, 한강 하류 유역으로 진출하여 서해안 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하였으며, 동북으로는 함경남도 이원지방에까지 이르렀다. 진흥왕은 이렇게 확대된 영역을 직접 순수하면서 이를 기..

Read more

[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신라 22대 진흥왕 순수비의 하나. 비신의 높이 146m, 폭 44cm, 두께 30cm. 이 비는 함경 남도 이원군 동면 사동의 만덕산 복흥사 뒤에 있는 운시산 꼭대기에 세워졌던 것이라 전하며, 비신은 산 허리에, 개석은 그 아래 계곡에 굴러 떨어져 있었으나, 절 윗쪽 평탄한 곳에 새로 세웠다. 비문으로 미루어 진흥왕이 568년(진흥왕 29)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국경 ..

Read more

[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 신라태종무열왕릉비. 이 비는 신라 문무왕 원년(661)에 무열왕의 업적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지금은 비석의 몸체가 없어지고 비석 받침돌이었던 귀부와 머리부분인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는 목을 길게 치켜 들고 힘차게 뒷발로 땅을 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북의 모습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씩씩한 기상을 엿볼 ..

Read more

[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함경 남도 함주군 하기천면 진흥리 소재. 높이 약 1.15m. 너비 약 0.46m의 돌인데 현재 상부와 하부가 결손되었다. 전 12행(行). 1행에 35자씩 해서(楷書)로 음각되어 있다. 이 비석은 568년(진흥왕 29)에 세워진 것으로 마운령비와 비문의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개 비의 위치가 바로 신라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인가는 논란이 많으나 실존 2비의 위치대로 봄이 ..

Read more

[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백두산에 세운 조선과 청국 사이의 경계비. 1712년(숙종 38) 청나라 오라총관(吉林摠管) 목극등(穆克登) 등과 조선 조정에서는 박권(朴權) 등이 백두산을 현지 답사하여 세웠다. 백두산 위에 세운 조선과 청나라의 경계를 표시한 비석. 정계비는 백두산 산정 동남쪽 약 4㎞, 해발 2200m 지점에 세워졌는데, 그 비문에 ‘서위압록 동위토문 고어분수령상……(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이라 되어 있다. 백두산이 청..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