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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공산성 내 서쪽의 표고 85m의 정상부, 종래 쌍수정 광장으로 불려왔던 약 6,800평방미터의 면적이 추정 왕궁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임류각은 궁의 동쪽에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980년에 조사된 임류각지에서 서쪽으로 왕궁이 입지할 수 있는 위치는 이 곳밖에 없다는 논거로 1985년부터 1986년에 걸쳐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확인된 유적은 건물지를 비롯하여 용수를 저장할 수 있는 연못과 목곽고 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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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김해읍지(金海邑誌)』에 의하면 가락국 건국의 해인 서기 42년 3월부터 44년 2월까지는 귀지봉부근(龜旨峰附近)인 지금의 김해농고 근처의 가궁(假宮)에서 집정하였고 44년 2월에 신궁에 옮겼는데 그 신궁자리가 이 부근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가락 중기까지의 궁지(宮址)라고 전하여지고 있다. 지금은 모두 민가화 되었으며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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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조선 고종이 탄생한 집으로 12세까지 이 집에서 자라 철종의 대를 이어 입승대통함으로써 그 생부 李昰鷹은 興宣大院君이 되고 이 집은 고종이 등극하자 한채 한채 보태어 지어나가 운현궁으로 불리우게 되었는데 여기서 대원군은 서원 철폐, 경복궁 중건 등의 사업을 했고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 때에는 이 궁에서 납치당하기도 했다. 현재는 덕성여대로 궁의 일부가 쓰이고 있으며 현재는 사랑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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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궁궐. 사적 122호.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하여 경복궁을 왕궁으로 삼았으나 정종이 개성으로 환도하였고 태종 때는 다시 한양에 이궁을 짓게 하여 태종 5년(1405)에 완공하니 창덕궁이라 명명되고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까지 건립하고 계속하여 仁政殿, 宜政殿, 昭德堂, 寶慶堂, 麗日殿, 淨月殿, 玉華堂 등 많은 전각들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으로 소실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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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가락국(駕洛國) 초기 본궁은 봉황동(鳳凰洞)에 있었으나 제8대왕때 이곳으로 내궁(內宮)을 옮겼다고 전해지는 유적으로 지금의 연화사(蓮花寺)와 사충단(四忠壇) 시장 일대가 궁지(宮址)로 추정되고 있으며 1887년에 김문배(金文培)이 “가락고도궁허(駕洛古都宮墟)”라고 자연석에 각자하여 비를 세웠는데 윤용구(尹用求)의 글이다. 비고(碑高) 2m, 두께 0.3m, 폭 0.9m이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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