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알려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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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조선 단종(端宗)의 외조부인 권전(權專)은 세종(世宗)때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통정대부(通政大夫) 등의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세종 22년에는 관직이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이르렀다. 권전의 묘앞에는 세종 29년(1447)에 건립된 오래된 비석이 있고 숙종 44년(1718)에 세운 비와 1975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세종대의 비문은 집현전 응교 이계전이 글을 짓고 수찬(修撰) 이영서(李永瑞)가 글씨를 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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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김우명[(광해군 1년(1619)-숙종 1년(1675)]의 자는 이정(以定), 본관은 청풍으로 영의정 김육(金堉)의 아들이고 현종의 장인으로서 인조 20년(1642)에 진사가 되고 현종이 즉위하자 국구(國舅)로서 청풍부원군에 봉해졌다. 지금 묘소에 그가 묻힌 연유에는 다음의 전설이 있다. “그가 사망하자 조정에서 춘천기 신동면 옹리에 묘소를 내리어 북한강을 거슬러 배로 운구하던 중 강중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아 고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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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박제형은 조선 고종(高宗) 19년(1882)에 출생한 항일투사로 자는 무칠(舞七), 호는 철오(鐵塢)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었으며 두뇌가 탁월하여 별명이 학능(學能)이었다. 장년기에 청년회 등을 조직하여 배일사상을 양성하였고 동지들의 활동을 돕고자 경영하던 양조장, 인쇄업을 비롯하여 전답 등의 가산을 탕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만국평화회의가 헤이그에서 열리자 곽종석(郭鍾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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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신예남의 자(字)는 문길(文吉)이며 백암 김륵(金)의 문인이었다. 그는 청주 오공촌에 우거(寓居)하다가 임진왜란때 왜적에게 항쟁하여 많은 적을 무찔렀으나 포로의 몸이 되자 자살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부인은 적장의 손목을 끊고 자결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 그에게 참판을 증(曾)하고 또 그 부인의 절의를 아름답게 여겨 정부인을 내리고 삼강행실록에 기록하였다. 그는 적진에서 자살하여 시신을 찾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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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유병헌은 조선 헌종(憲宗) 8년(1842)에 칠곡군 북삼면 상강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10년 7월 한일합병이 발표되자 이완용(李完用), 송병준(宋秉畯)등 오적망흉(五賊亡凶)과 이용구(李容九)등 일진회의 매국죄를 성토하여 국내와 국외에 알렸다. 또한 일본내각과 총독에게 역탈(逆奪)의 간악함을 책하고 열국 공론에 호소하였다. 그는 일제에 대한 항세로 3번째 하옥되어 8일간 단식 끝에 자결하였다. 묘역에는 상석(床石)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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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이정(李楨)은 조선 명종 때 학자, 자는 이강(而剛), 호는 귀암(龜岩)이다. 어려서는 규암(圭岩) 송인수(宋麟壽)가 사천에 귀양살이 할 때 수학하였고, 만년에는 퇴계 이황, 이도암 문하에 출입했으며 『성리유론』과 『경현록』을 편집하였다. 그가 죽은 뒤 1602년 고향에 귀산사(龜山祠)을 세우고 비석에 그의 생애를 기록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파헤친 것을 현 위치에 개장하였다. 묘갈명은 미수(眉壽) 허목(許穆)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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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정세아(鄭世雅)는 조선 중종(中宗) 30년(1535)에 영천(永川)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호수(湖○)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의번(宜藩)에게 “군부(君父)가 몽진하시는데 우리가 어찌 초간(草間)에서 살기를 구하겠는가”하며 대오(隊伍)를 짜고 격문(檄文)을 돌려 의병 900여명을 모집하였다. 병사(兵使) 박보(朴普)가 그를 의병대장으로 삼고 다시 초론사(招論使) 김성일(金誠一)이 각읍의의장(義將) 중에서 그를 본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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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최강(崔堈)의 형 최균(崔均)의 묘소로서 최균은 호를 소호(蘇湖)라고 했다. 천문지리(天文地理)에 통달하여 풍운대(風雲臺)라고 했다. 수문장(守門將)에 임명되었고 1624년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도 공을 세웠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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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중화계리 3반 뒷산 김축의 묘와 같은 국내(局內)에 있으며, 동리에서는 이곳을 “김장군묘”라 부르고 있다. 상석과 동자석, 장명등, 문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 묘비는 현종 14년(1673)에 세웠다. 【참고문헌】 강원도·홍천군·강원문화연구소, 1996, 『홍천군의 역사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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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남상필은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항일의거가 일어나자 같은 마을의 안용호, 김용준, 남병호 등과 함께 4월 9일 풍기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며칠동안 수백장의 태극기를 만들었다. 4월 9일이 되자 동지들과 함게 태극기를 숨겨 가지고 일찍 시장에 침입하여 장꾼들이 가장 많은 쌀시장에서 안용호는 태극기를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고 남상필은 경찰서로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경찰 헌병을 교란시키다 체포되어 풍기만세를 지도하였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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