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Category Path : Korean Heritage Adminstration » 유적건조물/무덤 » 무덤 »
Subcategories : 묘비 | 알려진 묘 |
Words Count : 1588

명사|||문화유산 금막용(琴漠龍)은 조선 인조(仁祖) 14년 병자호란때 형제들과 함께 쌍영진에 출전하였던 인물이다. 당시 두 형을 적에게 잃어 형의 군복 소매로서 조혼을 하였다. 후일 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이 되었으며 조정에서 공신록권(功臣錄券)을 내렸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김치중은 조선 선조(宣祖)때 수많은 왜적에 항거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항거치 못하고 차라리 왜적에 포로로 잡혀 고역하기보다는 죽는 편이 낫다하고 절벽에서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당시 치화(致和), 치홍(致弘)이라는 두 동생도 향리의 용사들과 규합하여 항거하였으나 도저히 만회할 수 없어 자살하였다. 묘는 자연석으로 쌓은 단 위에 조성되었으며, 앞에 묘비가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Read more

|||문화유산 박주상은 1830년 예천에서 태어났다. 충효를 생의 기본으로 지키며 학문에 전력하여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1895년 일본이 민비를 시해하자 사재(私財)를 털어 각 사림에 통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였다. 65세의 고령으로 대장에 추대되어 다른 의병장 김하락, 이강년 등과 상호 연락하여 북진키로 ..

Read more

|||문화유산 유운룡(柳雲龍)의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巖)으로 입암 중영의 아들이다. 처음으로 퇴계 이황(退溪李滉)의 문하에 올라 여러 제자가 따랐다. 퇴계가 임종 전일에 ‘공성유잠택리인 증운문회보성인(孔聖猶箴擇里仁曾云文會輔成仁)’이라는 시를 지어주어 학문에 힘쓰게 했다. 인동현감으로 가서는 법으로 백성을 공평하게 다스렸고 오산서원을 창건하고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를 세워 충의를 고취하였다. 임진왜란때에는 풍기 군수로..

Read more

|||문화유산 이준(李埈)은 조선시대의 문인으로 자는 숙평(叔平), 호는 창석(蒼石)이며 본관은 흥양이다. 이수인의 아들이며 지례 현감을 지낸 이전의 동생이다. 그는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으로 1591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교서관정자(校書?正字)가 되고 이듬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경세(鄭經世)와 의병을 모집하여 적군과 싸웠으나 고모담전투에서 패했다. 이때 그는 중국 역대 왕들의 덕행과 신하들의 정사를 밝힌 『중흥귀감』을 ..

Read more

|||문화유산 최문병의 호는 성재(省齋)로 효행이 극진하고 학문에 통달하였으며 특히 구도서(口倒書)에 능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의병을 모집하고 사재를 팔아 의병의 식량을 대고 복병을 배치하여 적을 기습하는 한편 청도(淸道) 의병장 박경전(朴慶傳)과 연합, 두곡(杜谷)에서 적 수백명을 참살하고 다시 영천(永川) 의병장 권응수(權應銖)와 합류하여 화공전으로 많은 전공을 거두었다. 후에 병사 박보(朴普)의 상소로 감목관(監牧官)이..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서기의 묘비는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위치하는데 비는 높이 125㎝, 폭 46㎝, 두께 24.5㎝로 비문은 명제 윤증이 짓고 홍계희가 썼다. 서기(1523∼1591)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이천이며, 자는 대가, 호는 고청초로·귀당·이와이다. 서경덕·이중호·이지함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제자백가는 물론 기술의 이론까지 통달하였고, 선학을 좋아하였다. 홍천과 지리산·계룡산 근처로 옮겨 ..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