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정자


명사|||문화유산 만곡 조술도(晩谷趙述道)의 정자인 강정(江亭)은 영양읍 하원리의 강변을 끼고 상원리로 가는 길의 선유굴(仙遊窟)위에 있다. 정자의 터전은 천작(天作)으로 석대를 이루고 대의 아래에는 층암절벽이 늘어서있으며 앞에는 맑은 연못이 있다. 남으로는 옥선대(玉仙臺)가 보이고 북으로는 일월산영봉(日月山靈奉)이 있다. 경학과 문장에 명망이 두터운 조술도는 노년에 후진학자(後進學子)들과 함께 논도강학 (論道講學)하고 수양하였는데 이곳..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관호정(觀湖亭)은 남구 화장동 농막마을 김인규 씨 집 뒤편 숲속에 있다. 김영현(金永鉉)이 지은 것으로 계남정사(桂南精舍)라는 현판도 가지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 구조를 하고 있다. 평주 위에는 굴도리, 고주 위에는 납도리가 지나가고 있는 평 5량가이다. 현판은 원운(原韻), 차운(次韻) 등 2개가 있다. 원래는 정인보(鄭寅譜)의 기(記) 및 김승수(金昇洙), 정순전(鄭淳銓), 고광수(高光..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군자정은 조선 중종때 건립된 것으로 1915년 3월 10일에 중건하였다. 문정공(文貞公)의 후손이며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서 연산군(燕山君)때에 안기도(安奇道) 찰방(訪)을 재임한 바 있는 모헌공 이원숙(慕軒公李元叔)이 무오사화(戊午士禍)때 화를 피해 낙향하여 은거한 곳에다 이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이곳화를 피해 낙향하여 은겼錫英)의 기문이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당초에는 牛頭亭이라 불렀다 하며 이를 물려받은 삼척유수 逢來 楊士彦(1517-1584)이 金水亭(또는 錦繡亭)이라고 개명했다고 전하며 角石柱(높이 1m, 두께45cm)의 장초석 8개가 잔존하고 있으며 부근 암반에는 금대란 각명이 있다. 주초석을 통해 보면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정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남악정(南岳亭)은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온 숙종조의 성리학자이며 이조판서를 지낸 갈암 이현일의 정자로 1676년에 초가 2칸을 짓고 남악초당이란 현판을 붙였다. 그 후 1821년(순조21)에 후손들이 초당자리에 정자를 세워 남악정이라 하였다.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다. 정자 앞은 푸른 바위가 절벽을 이루고 수목이 무성하며 푸른내가 흐르는 고요하고 한적한 절경을 이룬다. 갈암 이현일은 남악초당에서 1..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대야정(大亭)은 조선 정조, 순조 연간의 학자인 대야 유건휴(柳健休)가 지은 정자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낙향하여 집곁에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여 『이학집해(里學集解)』 및 『대야집』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박공 기와지붕으로 자연석 기단위에 주초를 놓고 그 위에 각주(角柱)를 세웠으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3량가의 집이다. 이 정자는 안동시 ..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조선 현종 3년(1662) 건립했으며 당시는 군자정이란 사정으로 건립되었으나 1912년 이를 폐지하고 전주 기녕당이라 명명하여 양로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정면, 측면 각 1칸인 정각이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전라..

Read more

명사|||문화유산 모정(茅亭)은 행정(杏亭) 박눌(朴訥)이 아들 다섯을 이곳에서 교육하여 다 출세시킨 교육장이요, 독서당이다. 거린(문과 창녕), 향린(문과, 참의) 홍린(찰방), 붕린(문과, 설서) 종린(문과, 정랑)은 모두 그의 아들이다. 용암(龍庵) 박홍린(朴洪麟)의 시가 『황화집(황화집)』에 올랐으니 다들 시명이 있었을 것이나 현재 문헌기록이 없다. 정사룡(鄭士龍)이 행정의 성사를 칭찬한 서문이 있다. 【참고문헌】 상주문..

Read more

Sorry, Login User Can See Next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