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Korean Heritage Category


명사|||문화유산 임진왜란 때(1592년) 5월 4일 서울을 빼앗기고 진주성만이 남았을 때 선조 25년(1592년) 6월에 6만 왜병이 진주성을 세겹으로 둘러싸서 침략하니 삼장사(三壯士)인 창의사(昌義使) 김천일(金千鎰), 충청도 병마절도사 황진(黃進), 경남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를 비롯한 장병 6만명이 주야로 혈투하였으나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이 원한을 풀기 위해서 한 여인이 의암 위에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지를 끼고 왜장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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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여미리 정문거리에 김가근(金可近) 정려가 있다. 정려는 시멘트 기단에 정·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정려 안에는 돌로 만든 비가 있는데 화강암으로 양쪽에 네모 기둥을 만들고 위에 옥개석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편액을 대신한 것으로 음각으로 글을 새겨 놓았다. 【참고문헌】 서산문화원 외, 1991, 『서산태안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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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동인지문사륙』은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최해(崔瀣,1287∼1340)가 편집한 책이다. 그의 문집인 『졸고천백(拙藁千百)』에는 「동인문서(序)」와 「동인사륙서(序)」가 있다. 「동인문서」에 의하면 그는 우리나라 시문을 선집하여 시를「오칠」, 문을「천백」, 병려를「사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동인사륙서」에는 「사륙」에 대해 따로 체례(體例) 문제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동인지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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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명사|||문화유산 직지사에 대한 자료 중 1681년 조종(趙宗)이 지은 비문에는 “본사사적비훼이실 기문구불가계야(本寺事蹟碑毁而失其文俱不可稽也)”라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776년 급고자(汲古子)가 지은 사기(寺記)에는 “어학조대사소찬사적 부자보지탈자입지(於學祖大師所撰事蹟 趺者補之脫者入之)”라 되어 있다 그리고 전기 비문(前記碑文)에 “혹전묵호아도창 일선 군냉산도이사 동시개기자야(或傳墨胡阿道一善 郡冷山桃李寺同時開基者也)”라 하였고 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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