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 곡성군(谷成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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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석곡면에 있는 국사봉이 마을에서 보여 화재의 발생이 빈번하다하여 화재의 액운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괴소리 신연 마을 앞 고속도로변 논에 적석 선돌 1기가 있다. 원형 적석은 다른 열과 달리 지름 450cm, 높이 60cm의 원형적석을 쌓은 다음 이 위에 또 지름 290cm, 높이 130cm의 적석을 하고 그 상면에 선돌을 세웠다. 선돌은 끝부분이 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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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죽천 마을 민가 사이에 2기와 마을 우측 야산 하면에 3기 등 5기의 고인돌이 있다. 그 밖에 고인돌 상석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다수 있다. 민가 사이에 있는 고인돌의 크기는 260×210×120cm, 360×200×170cm이고 형태는 타원형과 장방형이며 지석은 1개가 보인다. 【참고문헌】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임영진·양해웅, 1996, 〈곡성군의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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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만수는 입면의 남동부에 있는 마을로 동락산의 구릉으로 형성된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은 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배병선 씨 산에 있다. 봉분은 삭평되어 그 규모를 알 수 없으며 유물은 도굴되어 찾을 수 없다. 1호는 할석을 다듬어 6∼7단으로 벽을 축조하고, 천정은 넓은 판석으로 덮고 있다. 2호는 뚜껑돌로 여겨지는 석재 1매만이 보이고 있다. 석실분 바로 아래에는 축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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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정재건(1843∼1910)은 호가 소송(小松)인데 문과에 급제, 동간원 정언과 동헌부 특평을 지내고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지신이라 칭하고 9월 4일 신시에 자결한 애국지사였다. 낙천리 377번지는 선생의 평생동안의 거주지이며 선생의 장원급제 때의 자선교지(홍패1장 등 모두4장), 어사화(현재 거의 파손상태에 있음) 등이 있고 선생이 순결할 때 쓴 단도(길이 18cm), 유서, 의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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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가곡리 가곡 마을 100m 전방 도로변 양 쪽에 마주보고 2기가 서 있다. 우측의 것이 남상으로 머리 위에는 갓을 썼고 수염이 세 가닥 어깨 밑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의 표정은 험난하지 않고 온화하다. 크기는 230×60×35cm이다. 좌측의 것은 여상으로 남상보다 온화한 표정이다. 크기는 210×60×25cm이다. 금명문(金名文)은 없다. 【참고문헌】 전라남도, 1986, 『문화유적총람』 ; 임영진·양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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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문화유산 군지촌은 1520년대에 심광형이 자손만대에 영세거주지 새터를 잡고 ‘군지촌’이라 촌명을 정하고 자기 서재를 ‘군지촌 정사’라고 하였다. 중국 순임금이 정한 12삽 중 삽 하나를 분삽한적이 있는데 자기가 낙향함을 순 임금의 분삽에 비유하여 자손이 번영을 이어가고 군지촌이라 정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 등 3동이 있는데 심해섭 씨가 모두 사용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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